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피날레는 장률 감독의 ‘루오무의 황혼’이 장식했다. 장 감독의 작품은 26일 열린 제30회 BIFF 폐막식에서 영예의 ‘부산 어워드’ 1호 대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이날 오후 6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진행된 폐막식에서는 대상을 포함해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배우상, 예술공헌상까지 모두 다섯 개 부문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이들에게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디자인하고 SWNA가 협력 제작한 트로피가 수여됐다. 또 5000만 원(대상)부터 2000만 원(감독상), 1000만 원 등 부문별 상금도 주어졌다. ‘부산 어워드’는 BIFF가 30회를 맞아 처음 도입한 아시아 작품 대상 경쟁 부문으로, 시행 첫해인 올해 모두 14편이 경쟁했다.
∎레드카펫 첫 주인공은 ‘숨은 영웅’
폐막식 레드카펫 행사는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진행됐다. 첫 주인공은 BIFF의 숨은 영웅인 자원봉사자 대표 25명. 이들은 각자 맡은 업무와 관련된 재치 있는 손팻말과 소품을 들고 입장해 관객들로부터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마을영화만들기 프로젝트 참가자 20명도 무대에 올랐다. 재부 해외영사단과 해외영화제 및 각국 영화진흥기구 관계자도 무대에 섰다. 재부산일본총영사 배우자 오스카 모리에 씨 등 여럿이 자국 전통 복장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25일 열린 ‘비전의 밤’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레자 라하디안 감독의 ‘판쿠의 시간’ 등 비전 부문 상영작 팀들도 레드카펫에 차례로 등장했다.
‘부산 어워드’를 놓고 경쟁을 펼친 경쟁부문 진출작들이 소개될 땐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리기도 했다. 특히 임선애 감독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팀의 배우 수지와 이진욱을 향한 팬들의 응원도 크게 들렸다. 수지와 이진욱은 함께 손하트를 만들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첫 장편 연출작 ‘인-아이 인 모션’으로 15년 만에 부산을 찾은 줄리엣 비노쉬는 순백색 정장으로 등장했다. 레드카펫의 대미는 부문별 심사위원들이 장식했다.
∎BIFF를 빛낸 작품들
“와우~.” 폐막식 사회를 맡은 배우 수현은 자신에게 잘하자고 주문을 외듯 큰 소리를 지르며 폐막식 무대를 열었다. 곧바로 선재상을 시작으로 각 부문 시상이 진행됐다. 선재상은 김상윤 감독의 ‘비 오는 날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와 왕한쉬안 감독의 ‘마음이 열리는 시간’에게 돌아갔다. 김 감독은 수감 소감을 밝히며 객석에 앉아 있는 박주영·임호경 배우를 호명하며 관객들의 박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비프메세나상은 ‘이슬이 온다’(주로미·김태일 감독)와 ‘노래하는 황새 깃털’(헤멘 칼로디 감독)이 받았다. 김태일 감독은 후배 독립영화인들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영화제작을 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는 이어 “BIFF의 지원으로 이번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며 지속적인 지원을 희망했다. 수상을 미리 알려주지 않아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칼로디 감독은 앞선 수상자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할애해 소감을 밝혔다. 올해 뉴 커런츠상은 류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에 돌아갔다. 이 상은 경쟁부문과 비전 섹션에 상영된 신인감독 데뷔작에게 수여된다.
∎경쟁 부문 발표 땐 ‘긴장감’
이날 폐막식의 하이라이트인 경쟁부문 시상식이 진행되면서 식장 주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처음 발표된 상은 예술공헌상으로, 비간 감독의 ‘광야시대’에 참여한 리우창·투난 미술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이 부문은 지난해 29회 BIFF 까멜리아상 수상자인 류성희 미술감독이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 의미를 더했다.
배우상은 줄리엣 비노쉬의 시상으로 발표됐다. ‘부산 어워드’ 1호 배우상 수상자는 ‘지우러 가는 길’의 이지원과 ‘어리석은 자는 누구인가’의 하야시 유타였다. 이지원은 “아버지가 소감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그냥 즐겁게 다녀오겠다고 했다”며 “앞으로 더 정진해 멋진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하야시 유타는 “우리 영화는 세상과 개인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마주하는지를 묻는 작품이었다”며 “살아가려는 노력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어 진행된 심사위원 특별상은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에 돌아갔다. 한 감독은 “주민형 배우와 백지혜 배우, 그리고 저를 지지해준 친구들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감독상은 첫 연출작 ‘소녀’의 서기 감독이 차지했다. 서기 감독은 “모두 훌륭했지만 오늘은 제게 조금 더 행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과 저를 지지해주는 남편에게도 감사하다”며 “허유샤오시엔 감독님의 지원이 없었으면 이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거다. 마음속에 상처를 입은 모든 소녀들이 용기 있게 세상 밖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첫 대상은 ‘루오무의 황혼’
대상의 영예는 장률 감독의 ‘루오무의 황혼’에 돌아갔다. 심사위원장 나홍진 감독은 “논의가 치열했지만 결국 만장일치로 쉽게 결정된 작품이었다”며 “이런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시상자 일디코 에네디 감독은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봐준 관객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장률 감독은 “2005년 뉴커런츠상 이후 20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다”며 “부산영화제가 100주년을 맞는 날에도 여전히 함께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장 감독은 이어 “이번 작품에 함께한 배우와 제작진, 그리고 영화를 촬영한 중국 어메이산 주민들에게도 감사드린다”며 “과거 제 작품이 개막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상 수상작으로 폐막식에 서게 돼 더욱 영광”이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영화를 보고 작품이 별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어메이산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영화를 본 뒤 어메이산을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직접 가이드가 돼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산을 사랑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한다”며 영화제와의 깊은 인연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 수현은 “영화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여러분 크게 웃어주세요”라는 말로 무대를 갈무리했다. 그의 인사와 함께 열흘간 이어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장정은 환호와 웃음 속에 힘차게 매듭지어졌고, 다시 올 영화의 시간을 약속하는 울림 있는 마침표가 됐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