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65만 청년들이 그냥 쉰 이유

입력 : 2026-09-09 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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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편집부 차장

미스코리아 대회 성형 의혹 민감
게임 룰 위반 공정성 훼손 비판
불공정한 한국 사회 청년들 절망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기회 절실

최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한 여성의 성형 논란이 뜨겁다. 과거 방송에 출연했던 10대 시절 모습과 현재 외모가 크게 다르다는 이유로 의혹이 제기됐다. 당사자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성형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유독 이 문제에 민감하다. 유명인의 외모가 조금만 변해도 인터넷은 순식간에 불붙는다. 대중은 왜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할까? 그들은 단순히 외형의 변화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공정의 훼손’이다.

성형은 하나의 특혜나 반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본으로 출발선을 바꾸었다는 인식이 작동한다. 특히 외모 평가가 핵심인 미인대회에서 성형이라는 편법을 쓴 참가자는 경쟁의 규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공정성 시비는 비단 미인대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공정성은 한국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예민한 역린이다. 취업과 시험 등 경쟁이 치열한 영역에서 반칙으로 승리를 챙겨가는 광경을 볼 때 대중은 분노를 넘어 무력감에 빠진다.

최근 한 인기 연예인이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거센 비난을 받았다. 대중이 분노한 본질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축적한 부와 권력이 대를 이어 세습되었기 때문이다. 그 부당한 자본을 바탕으로 후손들이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 분노의 근본 원인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바라보는 씁쓸한 시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부모의 직업과 재력이 자녀의 스펙을 결정하고, 노력이 미치지 못하는 격차를 벌려놓는 세습 자본주의가 이 논쟁의 이면에 있다.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출발선에서 까마득히 앞서 나가는 광경을 볼 때 청년들이 느끼는 것은 깊은 박탈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이 이토록 화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를 타인의 성공에 대한 시샘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본질은 불공정한 사회 구조에 있다. 기득권이 짜놓은 판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제대로 된 경쟁조차 해보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청년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실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 절반가량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불공정하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기득권의 부정부패, 공정하지 못한 경쟁 시스템 등이 불공정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용혜인 의원을 둘러싼 ‘벼락출세’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용 후보자는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의 혜택으로 비례대표만 두 번 당선됐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채 장관까지 겸직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중·삼중의 특혜”라는 지적에 직면했다. 공정과 기회의 균등을 외치던 젊은 정치인마저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리는 모습은 위선 그 자체다.

불공정이 일상이 된 사회 탓일까. 최근 청년 고용률은 장기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구직도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이 65만 명을 웃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향해 의지 부족이라며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청년들이 도전에 발을 빼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판이 뒤집히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 것은 아닐까. 불공정에 가로막힌 청년들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이미 효용을 다했다. 그들은 주류 사회의 경쟁 체제 밖으로 탈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43조 원이 넘는 청년 예산을 편성했다. 성장 단계별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현금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국가가 쥐여주는 시혜성 푼돈이 아니다. 그것은 자립을 돕기는커녕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어 청년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환대의 역설일 뿐이다. 현금 살포는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특히 자신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나랏빚이라는 사실을 청년들은 잘 알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과제는 임시 처방이 아니다. 청년이 원하는 것은 제대로 싸워볼 수 있는 ‘공정한 기회’다. 특혜를 차단하고 동등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제도적 뼈대를 먼저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 최소한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 보장이 마련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막대한 예산도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국가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을 방치하는 것은 청년들에겐 깊은 상처를 안기는 또 다른 폭력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