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BIFF 화제작 2편과 ‘크리에이터’ 봤더니(feat. 영화증정권 이벤트)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3-10-06 16:48:39

※지난 주 ‘경건한 주말’ 뉴스레터에서 구독자 여러분에게 안내했던 감사 이벤트 기간을 연장합니다. 오는 10월 13일 오후 1시까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참여를 인증하는 10분을 선정해 영화관람권을 2장씩 증정합니다. BIFF에서 관람한 영화 중 제일 좋았던 작품의 제목과 한줄 평을 (https://forms.gle/PRrgVNnNWuMRVJJQ8)로 보내주세요. 당첨자는 10월 13일 발표합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약속의 땅’과 극장 개봉작 ‘크리에이터’. BIFF·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약속의 땅’과 극장 개봉작 ‘크리에이터’. BIFF·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두고 ‘축제’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BIFF를 ‘그들만의 축제’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 기자가 그랬습니다. 그때도 한 달에 영화관을 3~4번씩은 가는 영화 팬이었지만, BIFF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것 같아 구미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편견은 BIFF 취재를 여러 차례 맡아 직접 출품작을 보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습니다. 몇 해가 지나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다만, 전개나 호흡이 익숙지 않아 지루하기만 했던 영화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자는 2018년 열린 제23회 BIFF 취재 때는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제 작품들 대신 당시 개봉한 ‘베놈’을 보러 근처 영화관에 가기도 했습니다. 취재 중 짬짬이 BIFF 상영작을 보시던 부장님께서 황당해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기자 주변에는 BIFF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인이 꽤 있습니다. 기자는 이런 영화 팬을 위해 지난 4일 개막한 제28회 BIFF 출품작 중 대중성도 적당히 잡은 영화 두 편 ‘1923년 9월’과 ‘약속의 땅’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울러 지난 3일 국내에 개봉한 기대작 ‘크리에이터’를 아이맥스(IMAX)로 본 후기도 남깁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관동대학살 다룬 일본 영화 ‘1923년 9월’

BIFF 시사회의 일종인 ‘P&I 스크리닝’ 첫 번째 작품 ‘1923년 9월’은 관동(간토)대지진 당시 일어난 ‘후쿠다마라 사건’을 다룹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 유언비어가 퍼졌고, 일본 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생소한 지방 사투리를 쓰는 가난한 일본 행상단 역시 조선인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후쿠다마라 사건의 발단입니다.

영화는 ‘관동대학살을 다룬 일본 영화’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진상조사도, 사과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모리 다츠야는 본래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1923년 9월’이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연출작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그 내용과 흐름은 아주 극적입니다.

영화엔 등장인물이 많은데, 조선에서 교사로 일하던 사와다(이우라 아라타)가 사실상 주인공입니다. 사와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인과 함께 조선을 떠나 고향인 후쿠다 마을로 돌아옵니다. “좋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는 사와다에겐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사와다는 농사를 지어보려 하지만 몸을 쓰는 일에 영 서투르고, 마을 사람들은 교사로 다시 일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사와다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마을 촌장 자리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친구 타무카이가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만 묵묵부답.

사와다가 세상을 등진 듯 변해버린 것은 4년 전부터입니다. 아내인 시즈코(다나카 레나)에게까지 시큰둥해 진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시즈코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중역의 딸이지만, “조선인을 속여 땅을 빼앗았다”고 인정하는 걸 보면 말이 통할 법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에게도 사와다는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한편 사와다와 같은 기차로 마을에 돌아온 것이 있는데, 바로 전장에서 죽은 일본 병사 유키야의 유골함입니다. 유키야의 아내인 사키에(코무아이)는 과부가 됐지만, 잘생긴 마을 청년이자 뱃사공인 쿠라자(히가시데 마사히로)와의 밀회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상의 인물들이 대체로 선역에 해당한다면, 이 마을 재향군인회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맹신하는 악역입니다. 퇴역한 뒤에도 군복을 입고 으스대는가 하면, 마을 잔치 자리에서 여성을 추행합니다. 뱃사공 쿠라자가 “군대에서 아군에게 맞았다”며 군을 비판하자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며 되려 쿠라자를 매국노로 몰아세웁니다. 과부인 사키에와의 관계를 이유로 ‘도둑놈’이라고 욕하기도 합니다. 마을 잔치가 난장판이 된 이후 쿠라자와 사키에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집니다.

영화는 중반까지는 비교적 담담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묘한 흡입력이 있습니다. 일본 농촌의 고즈넉한 풍광과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의 부조화가 빚는 미묘한 긴장감이 이어집니다. 전달되는 메시지도 많습니다. 전쟁이 일본 사회에 남긴 상처와 군국주의의 모순 외에도 성차별, 빈부격차 등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문제들을 억지스럽지 않게 꼬집는 데서 감독의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등장인물이 계속 늘어나는 점은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약 장사로 먹고 사는 천민출신 행상단과 ‘치바일보’의 정의로운 여성 기자의 서사가 마을 인물들의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복잡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각 인물들의 개성과 서사가 뚜렷해 몰입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와다가 ‘4년 전’ 일을 털어놓는 장면과 관동대학살 때 한 조선인이 자경단에게 희생되는 장면은 눈을 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유언비어가 마구 확산되는 과정과 일본인의 만행에 침묵하는 언론의 민낯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1923년 9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종반부에 다다르면 긴장감은 극에 달합니다. 일본 행상단을 조선인으로 오해하고 광기에 휩싸여 당장 죽이려드는 마을 자경단과 이들을 뜯어말리는 선역들이 크게 충돌합니다. 여러 복선이 한꺼번에 회수되면서 긴박감도 심화합니다. 얼기설기 엮인 인물들의 서사가 갈등을 고조시키고, 관객은 이토록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갈등이 치닫는 상황에서 폭발하는 명대사와 배우들의 열연이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연출이 다소 어색하거나, 급작스럽고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일부 있습니다. 신파적 연출을 자제하려 노력한 듯하지만, 일본 최초의 인권 선언인 ‘스이헤이샤 선언’까지 담아내려 한 것은 감독의 욕심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메시지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또 혐오와 차별이 쌓여 광풍이 몰아치는 과정이 오늘날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합니다. 시사점이 많은 ‘뉴 커런츠’ 부문 초청작 ‘1923년 9월’은 6일 오후 8시 첫 상영(예매코드: 097)에 이어 오는 9일 오전 9시(예매코드: 289)와 11일 오후 4시(예매코드: 475)에 관객과 만납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빠져들 수밖에 없는 대서사시 ‘약속의 땅’

매즈 미켈슨 주연의 드라마 장르 영화 '약속의 땅' 역시 실화 기반의 역사물입니다. 영화는 18세기 중반 덴마크를 배경으로 합니다. 천민 출신의 은퇴한 독일군 대위 루드빅 칼렌(매즈 미켈슨)은 덴마크 국왕의 숙원사업인 황무지 개간에 앞장서겠다며 왕실을 찾아옵니다. 왕실 재정부가 투자에 난색을 표하자 칼렌은 사비를 들여 일할테니 개간에 성공하면 귀족 신분과 함께 수익금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거래는 성사됐지만 칼렌 앞에는 온갖 험난한 일이 이어집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인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대사가 수 차례 반복됩니다.

아무것도 나지 않는 땅인 황무지를 개간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칼렌을 더욱 괴롭히는 정적이 있습니다. 황무지 인근 땅의 영주이자 주 판사를 겸직한 근방 최고의 권력자 싱켈(시몬 베네비에르)입니다. 이 사이코패스 영주는 그동안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황무지를 자신의 땅이라고 우깁니다. 싱켈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은 없지만, 대쪽같은 칼렌은 “국토의 모든 황무지는 왕의 소유”라며 그에게 등을 돌립니다. 수익금을 나누는 등 다소 불리한 조건의 계약에 서명만 하면 방해하지 않겠다는 회유성 압박도 무시합니다. 싱켈과 약혼을 앞둔 에델(크리스틴 쿠야트소프)은 그런 칼렌의 기개에 매력을 느낍니다.

영화는 옹졸하고 극악무도한 권력자 싱켈의 탄압과 회유, 그리고 이에 굴하지 않는 칼렌의 대립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칼렌에겐 계획이 다 있었지만, 싱켈의 방해 탓에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황무지 개간이 성공해 새로운 정착민들이 이주하면 자신의 영향력이 약해질 것을 아는 싱켈은 도무지 포기할 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칼렌의 인생은 혼란의 연속입니다. 극이 진행될수록 갈등은 깊어지고, 필연적으로 두 사람은 파국을 향해 달려갑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매즈 미켈슨이 연기한 주인공 칼렌은 인상적인 캐릭터입니다. 매정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따뜻한 면이 있고, 곧은 심지와 결단력을 갖춘 인간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시련이 거듭되면서 칼렌은 매번 딜레마에 빠지고, 선악의 경계에서 고뇌합니다. 매즈 미켈슨만큼 이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영화를 연출한 니콜라이 아르셀 감독은 ‘로열 어페어’(2012)로 매즈 미켈슨과 함께 작업한 바 있습니다. 당시 로열 어페어는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는데, 이번 작품은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습니다.

악역인 싱켈을 연기한 시몬 베네비에르의 호연도 몰입을 도왔습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악행을 저지르는 싱켈의 광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감도 상당합니다. 특히 싱켈의 하녀였지만 칼렌의 집에서 일하게 된 앤 바바라(아만다 콜린)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선보입니다.

‘약속의 땅’은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열연, 군더더기 없는 연출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대서사극입니다. 조금은 선정적인 장면이나 묘사도 있지만 모두 영화 흐름상 필요한 부분이고, 수위가 지나치지 않습니다. 6일 오전 첫 상영 당시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 대부분은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약속의 땅’

영화에서 칼렌이 내리는 선택들은 관객이 각자의 삶을 성찰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는 말이 있죠. 극중 칼렌은 황무지 개간과 귀족 지위라는 ‘목표’에 매몰돼 정작 삶의 ‘목적’을 망각하는 선택을 내리곤 합니다. 기자 역시 눈에 보이는 목표를 위해 인생의 목적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영화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발밑에 둔 가방을 깜빡하고 자리를 떴을 정도였습니다. 친절한 옆자리 관객 덕에 가방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 너무 빠져 정신을 못 차렸다”는 기자의 말에 관객은 “정말 재미있기는 했다”고 화답했습니다.

다만 퇴장하는 길에 또 다른 관객은 결말이 신파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2012)이 생각나는 엔딩이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개인적으로 마무리가 좋았습니다.

28회 BIFF 월드 시네마 부문 초청작인 ‘약속의 땅’은 오는 10일 오후 8시 30분(예매코드: 394)과 12일 오후 8시(예매코드 524)에 각각 상영될 예정입니다.


영화 ‘크리에이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용두사미 ‘크리에이터’…킬링타임으론 그럭저럭

지난 3일 개봉한 ‘크리에이터’는 인공지능(AI) 로봇과 인류의 전쟁을 다룬 SF 액션물입니다. ‘고질라’(2014)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를 연출한 가렛 에드워즈 감독의 신작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AI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된 존재입니다. 이러한 발전은 정체불명의 AI 설계자인 ‘니르마타’ 덕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AI가 205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핵폭탄을 터뜨리면서 AI와 인류의 공존은 끝납니다.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은 10년 뒤 AI와 전쟁을 선언하고 전 세계에서 AI를 없애버리려 합니다. 서방세계에선 AI가 사라졌지만, ‘뉴아시아’ 지역은 AI와 공존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개발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뉴아시아는 미국의 적이 됐습니다.

미국은 지상에 있는 적을 정확히 찾아 타격할 수 있는 공중 요새 ‘노마드’를 만든 뒤 AI 상대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노마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무기를 니르마타가 개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미국은 니르마타와 신무기를 찾아 없애는데 혈안이 됐다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미 특수부대 출신인 조슈아는 뉴아시아에서 잠입작전을 수행하던 중 사랑에 빠진 마야(젬마 찬)와 결혼했지만, 군의 성급한 작전으로 일이 꼬이면서 이별하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조슈아는 마야를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니르마타와 신무기를 제거하는 작전에 참여합니다. 엄청난 저항을 뚫고 조슈아가 겨우 찾아낸 신무기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린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매들린 유나 보일스)였습니다. 그런데 알피는 아내인 마야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조슈아는 작전을 버리고 알피와 함께 마야를 찾습니다.

영화는 액션이 몰아치는 초반까지는 꽤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조슈아와 알피의 동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에는 액션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극중 등장하는 초거대 기갑전차와 비행선의 모습은 눈길을 끌지만 ‘듄’을 비롯한 여러 SF 영화에서 이미 봤던 것들과 비슷합니다.

여러 설정과 메시지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고도화된 AI와 인간의 대립은 ‘아이로봇’(2004)이나 ‘채피’(2015), ‘터미네이터’ 시리즈 등 여러 영화에서 이미 다룬 주제입니다.


영화 ‘크리에이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크리에이터’.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리 심오하지 않은 영화의 메시지 역시 익숙합니다. AI와 공존을 거부하는 인류의 이기심과 잔혹함을 직관적으로 그렸는데, AI를 외계인으로 대체하면 ‘아바타’ 시리즈나 ‘디스트릭트9’과 다를 게 없습니다. 전반적인 영화 흐름은 ‘블레이드 러너’(1993)와도 유사합니다. ‘AI 블록버스터의 신세계’라고 홍보하며 잔뜩 기대하게 만든 것에 비해 식상한 느낌입니다.

아시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리엔탈리즘도 집중을 방해할 정도로 거슬립니다. 영화 속 ‘뉴아시아’는 베트남과 일본, 네팔을 섞어 놓은 괴상한 지역입니다. AI가 경찰 업무도 맡는 2065년이라는 설정인데도 뉴아시아에선 베트남인 외양의 사람들이 농기계를 들고 직접 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마드로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군과 전쟁을 하고 있으니, 이거 완전 ‘2차 베트남 전쟁’입니다.

그런데 간판처럼 문자를 적을 수 있는 곳에는 일본어 투성이입니다.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로 오해할 정도로 일본어가 자주 노출됩니다. 하지만 AI의 창조자인 ‘니르마타’는 또 네팔어입니다. 실제로 니르마타가 미군을 피해 숨어있는 곳은 네팔 고산의 사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곳에선 AI 로봇까지 주황색 천을 두른 수도승 차림으로 지냅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권의 편견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뉴 아시아’가 아니라 ‘대충 아시아’”라는 한 누리꾼의 비판에 공감이 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에드워즈 감독은 지난달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영상과 음악 등이 아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자신도 아시아에 대한 애정이 크다면서 “아시아 관객들이 많은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각본에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만 알피 역을 맡은 8살 아역배우 매들린 유나 보일스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에드워즈 감독은 “다른 배우들에게 ‘왜 매들린 만큼도 못 하느냐’고 농담할 정도로 연출 지시가 필요 없는 특별한 배우였다”고 칭찬했습니다. ‘테넷’(2020) 주인공으로 얼굴을 알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AI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릭터를 맡아 나쁘지 않은 연기를 펼쳤습니다.

영화음악 거장인 한스 치머의 배경음악은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영상미를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드뷔시의 ‘달빛’ 한 곡 정도는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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