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5-06-13 09:45:39
시간 날 때 보려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찜’해둔 영화, 나중에 찾아보니 없어진 경험 있으신가요.
OTT 일부 콘텐츠는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되면 제공이 중단됩니다. 넷플릭스에서도 매달 특정 콘텐츠가 만료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극장 개봉작이 없는 이번 주, 놓치면 아쉬운 넷플리스 만료 예정작 ‘다우트’(2009)와 ‘레드 드래곤’(2002)을 소개합니다. 두 작품 모두 관객의 평가가 좋은 숨은 명작이지만, 이번 주말이 지나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습니다.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한 동명의 원작 희곡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다우트’는 제목처럼 ‘의심’에 대해 다루는 심리 스릴러물입니다. 원저자인 존 패트릭 샌리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고,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비올라 데이비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확신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젊은 신부 플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강론으로 시작합니다. 플린은 의심과 확신의 상관관계에 대해 역설하며 신앙심을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이때만 해도 플린은 자신이 바로 그 의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합니다.
1964년 플린이 부임한 미국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는 보수적인 공간입니다. 교장인 앨로이시어스 수녀(메릴 스트립)가 앞뒤 꽉 막힌 ‘철의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통제적 성향이 강한 앨로이시어스는 학생들은 물론 수녀들에게도 엄격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젊고 순진한 수녀 제임스(에이미 아담스)도 그를 두려워합니다.
그렇다고 앨로이시어스가 전형적인 악인인 건 아닙니다. 나이 든 수녀들에겐 배려심과 존중심을 나타냅니다.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는 것도 그들이 엇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겁니다.
문제는 그의 통제 대상에서 벗어난 플린 신부입니다. 청교도 신도처럼 금욕을 지향하는 강경파 앨로이시어스 입장에선 자유와 개방을 추구하는 진취적인 플린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을 품을 만한 정황이 발생합니다. 학교의 유일한 흑인 학생이자 복사(신부를 돕는 봉사자)로 일하는 도널드 밀러에게 플린 신부가 부적절하게 접근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황입니다. 제임스에게 이러한 소식을 들은 앨로이시어스는 플린이 밀러에게 수상한 짓을 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를 몰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플린이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플린의 해명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앨로이시어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둘은 살벌한 진실공방을 펼칩니다.
영화는 캐릭터의 성격과 학교의 분위기를 알리는 초반 30분 정도는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갈등이 본격화되는 중반부부터는 몰입감이 상당합니다.
플린 신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앨로이시어스의 추리가 옳은지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플린의 말을 들어보면 앨로이시어스가 편협해 보이지만, 앨로이시어스의 추측이 허황된 억측에 불과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관객은 비교적 중립적인 제임스의 입장에서 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연스레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간 시너지도 좋습니다. 앨로이시어스와 플린 단둘이 담판을 짓는 대목은 압권입니다. 도널드 밀러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비올라 데이비스는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고, 에이미 아담스의 혼란스러운 감정 연기도 일품이었습니다.
후반부에는 다소 충격적인 흐름이 이어져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인가’ 자문하게 합니다. ‘의심’에 대한 의미 있는 대사들 역시 생각을 자극합니다. 가짜뉴스와 자극적 여론 호도 현상이 넘쳐 나는 요즘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다우트’는 국내 극장에선 1만 3000여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관객 평가는 아주 좋습니다. 매즈 미켈슨 주연의 ‘더 헌트’(2013)가 떠오른다는 평이 많습니다. 또 이동진 평론가와 박평식 평론가도 각각 5점 만점에 4점, 10점 만점에 8점을 매겼습니다. 두 평론가 모두 배우들의 명연기를 관람 포인트로 꼽았습니다.
‘다우트’는 오는 14일 토요일까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는 15일이 지나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없는 ‘레드 드래곤’도 잘 만든 스릴러물입니다.
영화는 일명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일환입니다. 이 시리즈는 미국 범죄 스릴러 소설가인 토마스 해리스가 출간한 소설들과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등 영상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니발 렉터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오스카 시상식을 휩쓴 ‘양들의 침묵’(1991)입니다. 그보다 10여 년 뒤에 개봉한 ‘레드 드래곤’은 ‘양들의 침묵’ 이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브렛 래트너 감독이 연출한 ‘레드 드래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젊고 유능한 FBI 요원 그레이엄(에드워드 노튼)은 종종 최고의 법정신의학자인 한니발 렉터 박사(안소니 홉킨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의문의 살인범을 쫓던 그레이엄은 범인이 인육을 뜯어 요리해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 범인의 정체가 바로 렉터 박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렉터에게 일격을 당합니다. 그레이엄도 사력을 다해 반격해 둘은 크게 다칩니다. 이후 체포된 렉터는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됩니다.
몇 년이 흘러 그레이엄은 사실상 은퇴하지만, FBI는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합니다. 그레이엄은 의문의 일가족 연쇄 살인사건 수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하고 다시 현장에 복귀합니다.
증거를 살펴보니 범인은 끔찍한 잔혹성과 치밀함을 지녔습니다. 그레이엄은 남들이 놓친 단서를 추가로 확보해 수사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고, 이른 시일 내에 추가 범행이 예상되는 상황. 하는 수 없이 그레이엄은 수감된 렉터 박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레이엄과 그 가족은 위협을 받게 됩니다. 범인의 위협은 점점 커지고 수법도 대담해집니다. 그레이엄도 그에 맞서 위험을 감수하고 범인을 잡는데 모든 걸 겁니다.
잔악하고 미스터리한 살인마를 추적하는 영화는 스토리 짜임새가 허술하면 김이 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레드 드래곤’은 흡입력 강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소름 끼치는 연출로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20년도 더 된 영화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추리물 특유의 장르적 재미도 맛깔나게 살렸습니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범인의 윤곽과 범행 수법, 그리고 제목인 ‘레드 드래곤’의 의미를 비롯한 단서들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이 과정이 억지스럽거나 갑작스럽지 않아 몰입하기 좋았습니다.
기자는 ‘레드 드래곤’보다 5년 늦게 개봉한 ‘조디악’(2007)을 먼저 봤는데, 범인이 언론을 이용하고 경찰이 암호를 푸는 등 유사한 대목이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조디악’을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레드 드래곤’ 역시 취향에 맞을 겁니다.
영화는 앞서 소개한 ‘다우트’처럼 배우들의 열연이 핵심 관람 포인트입니다. 한니발 렉터 박사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섬뜩한 눈빛 연기는 대체 불가할 정도입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에드워트 노튼의 호연도 좋았습니다.
주연급 조연인 랄프 파인즈의 연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품격을 한층 올리는 찰떡 캐스팅이었습니다. 그와 호흡을 맞춘 에밀리 왓슨의 연기도 흡잡을 데 없습니다.
‘다우트’에서 신부였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이 영화에서 ‘기레기’로 등장하는데, 역시 현실감 넘치는 연기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상 소개한 두 작품 ‘다우트’와 ‘레드 드래곤’은 각각 중심 키워드가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다우트’는 ‘의심’, ‘레드 드래곤’은 ‘두려움’이라는 주제가 여러 차례 드러납니다. 확실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니 분위기가 산개하지 않고 집중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재미와 교훈을 모두 잡은 두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 이번 주말에 즐겨보시길 권합니다.
제 점수는요~: △‘다우트’ 85/100 △‘레드 드래곤’ 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