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2025-12-31 19:00:00
남해안 어디라고 해도 낯설지 않은 이곳은 북극해 노바야제믈랴 근처 해상이다. 유빙 없는 9월 중국 뉴뉴쉬핑 소속 두 선박이 유유히 랑데뷰하고 있다. 올 여름 한국 시범운항선도 이 뱃길을 지날 예정이다. 스캔드아시아 제공
지난달 23일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 개막과 더불어 북극항로가 성큼 다가왔다.
북극항로 준비를 두고 “수익성이 있냐” “상업 운항은 언제 가능하냐”는 회의적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를 실험이 아닌, ‘언제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극항로는 단기 성과보다 국가 물류 안전망이자 미래 전략 인프라로 접근해야 할 목표다. 특히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은 거대한 변화 앞에서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라 북극항로 관문이자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을 공식화하면서 북극항로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대체 물류망으로 급부상했다. 정부는 대한민국이 해양수도권 조성을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북극항로 개척이 반드시 필요다고 강조한다.
북극항로는 유럽기준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동항로(NSR)와 아시아와 미국 서부를 잇는 북서항로(NWP),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극점횡단항로(TSR)로 나뉜다.
통상 북극항로는 상업 운항이 가능한 북동항로를 지칭한다. 북서항로는 운항 경험이 없고, 북극점횡단항로는 빙하가 두꺼워 운항은 시기상조다.
북극항로가 최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 남방항로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수에즈운하와 믈라카해협에 집중된 글로벌 물류망은 지정학적 갈등, 해적 위험, 사고에 취약하다. 실제로 수에즈운하 봉쇄 사태는 단 한 번의 사고로 글로벌 물류망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북극항로는 남방항로의 대안 항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후변화는 북극항로 시대를 앞당기는 요인이다. 기후변화로 북극 얼음이 녹는 시기는 빨라지고 있고, 최대 해빙 면적은 계속 줄어들며 빙하 두께는 얇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북극 최대 해빙 면적은 1433만㎢로 47년간의 위성 관측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최소 해빙 면적도 2020년대 이후 330만㎢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최소 해빙 면적 100만㎢ 이하를 이르는 무빙(無氷) 시점을 2030년대로 내다보는 가운데, 이르면 2027년부터 무빙 시점이 도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극항로를 준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운항 거리 측면의 장점이다. 북동항로는 부산항과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연결하는 최단거리 항로다. 항해 일수 단축은 연료비 절감과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진다. 부산항이 단순한 동북아 거점항을 넘어 글로벌 환적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이런 가능성을 내다본 주변국은 이미 멀리 앞서가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2035 북극항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2035년까지 북극항로 전후방 산업에 총 39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에 ‘빙상 실크로드’를 내세워 북극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선사 하이제해운은 북유럽항로 정기컨테이너 노선을 개설하고 지난해 9~10월 20일 만에 북극항로 항해에 성공했다. 일본 역시 ‘제4차 해양기본계획’(2023년)에 북극항로 진출을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는 북극항로 주도권·선점 경쟁에 강대국보다 후발 주자로 뛰어든 만큼 속도전이 요구된다.
북극항로는 물류·에너지·군사 측면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 공간으로 부상했다. 다만, 북극항로는 러시아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위치해 러시아가 법적·행정적 통제권을 주장한다. 현재 미국과 서방국가의 대러 제재는 북극항로의 상업적 확대를 저해하는 주요인이다. 북극항로 진출을 위해서는 한러 협력관계 복원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북극항로 전도사를 자처했던 전재수 전 해수부 장관은 “미러, 러시아-EU 관계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회복될 수 있다”며 “북극항로 개척 기회가 왔을 때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원 영산대학교 북극물류연구소장은 “러시아 에너지 수출 방향이 아시아로 바뀌고 중국 의존도가 심화할 것”이라며 “단계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