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 2026-02-18 12:11:34
밀가루 가격 담합 의혹을 조사 중인 공정거래위원회가 20년 만에 제분 업체에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가루 판매대. 연합뉴스
밀가루 가격 담합 의혹을 겨냥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막바지로 접어든 가운데 제분 업체에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제분업계는 밀약을 반복해 여러 차례 제재받았지만, 여전히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을 비롯한 국내 7개 제분사(이하 제분 7사)가 밀가루 가격 등을 밀약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조사 중이다. 공정위 심사관은 제분사들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이에 상응하는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조만간 전원회의에 상정하며 각 제분사에도 보낼 계획이다.
공정위는 담합 효과가 완전히 해소됐는지 면밀하게 판단해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하도록 가격 재결정 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조만간 조사가 완료될 것"이라며 "2월 중에 (전원회의 상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최근 브리핑에서 밝혔다.
앞서 마무리된 검찰 수사를 통해 밀가루 담합 의혹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다.
검찰은 2020년 1월∼2025년 10월까지 약 5년에 걸쳐 제분 7사가 밀가루 가격변동 여부, 변동 폭·시기 등을 합의했다고 결론짓고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재판에 넘겼다. 담합 규모는 5조 9913억 원으로 추산했다.
만약 공정위도 전원회의에서 제분 7사들이 담합했다고 판단하면 부당 이익을 환수하고 불법 행위를 제재한다는 차원에서 과징금과 더불어 시정조치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정조치에 가격 재결정 명령이 포함될 가능성이 주목된다. 심사관이 사건을 전원회의에 상정하며 조치 의견으로 이런 명령을 요청할 수도 있고, 그와 별개로 전원회의가 직권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 사건에서는 원칙적으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다 검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분업체들은 2006년 담합 행위가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더불어 가격 재결정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 경우 공정위는 시한을 정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지난 후 다시 부당하게 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가격을 보고하게 해 감시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20년 전 밀가루 담합 제재 때 공정위는 8개 업체에 과징금 435억 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밀가루 가격 생산자 물가 인상률이 6년간 약 40%에 달해 공산품 평균(약 10%)을 크게 웃돌았다며 담합 관련 매출액이 4조 1522억 원 정도라고 추산했다. 과징금액에 이의를 제기한 업체도 있었지만,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쳐 공정위 처분이 결국 합당했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공정위가 20년간 잠들어 있던 가격 재결정 명령에 주목하는 것은 담합이 그만큼 심각하고 뿌리 깊다는 문제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문제가 된 행위가 적발된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가격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 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담합 기업이 먼저 가격을 낮춰 가격 재결정 명령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공정위는 설탕 가격을 밀약한 것으로 드러난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제당 3사에 최근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으나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공정위 조사가 개시 후 세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하한 점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췄다고 모두 가격 재결정 명령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담합 기업이 보여주기식으로 가격을 미세하게 낮추는 경우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담합 의혹이 불거진 제분사 중 일부는 밀가루 가격을 4∼6% 정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제분 7사가 심판대에 오르면 담합 여부와 담합 관련 매출액 규모 외에도 최근 이뤄진 가격 인하가 피해 복구를 위해 충분한 조치인지도 함께 심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