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들꽃처럼 (리뷰)

입력 : 2015-11-05 11: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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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스투데이 김상혁 기자] 어릴 때 학교 가는 길은 오래된 철길이었다. 그곳에는 늘 이름 모를 들꽃들이 있었다. 매일 밟혀도 완전히 꺾이는 법 없이 다시금 살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5일 개봉된 박석영 감독의 영화 '들꽃'의 세 소녀처럼 말이다.

'들꽃'은 지금을 살아내기도 버거운 세 소녀인 은수(권은수), 수향(조수향), 하담(정하담)이 가혹한 세상을 견뎌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메마른 땅 위에서 갓 피어난 소녀들의 순수한 빛이 사라지는 것을 담담한 시선으로 따른다.

실제 본인 이름으로 출연한 세 배우는 제목과 같은 들꽃들이다. 삼촌에 의해 밟히고, 포주 아줌마에게 꺾인다. 그럼에도 세 들꽃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주소 있는 집'을 꿈꾸며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손 내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들은 애초에 외부의 손길 따윈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도. 세 소녀는 스스로 폐가를 찾아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이며 겨울을 이겨낸다. '주소 있는 집'을 구할 돈이 없어져도, 삼촌에게 발각돼 짓밟혀도 손잡고 다시 일어선다. 아무도 보살피지 않아도 꿋꿋이 일어서는 철길의 들꽃과 같은 이들의 삶은 가슴을 적신다. 

엔딩도 인상적이다. 잡초가 무성한 들판에서 활짝 웃으며 함께 나아가는 세 소녀의 모습은 지난 시련을 이겨내고 다음 고난을 기다리는 들꽃을 연상시키며 안타까움을 남긴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먼저 조수향은 세 소녀 중 눈에 띄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자신들을 감금한 삼촌의 면상에 침을 뱉으면서 조소를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선 너무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소녀의 표정이 사실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감싸준 태성(강봉성)과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17세 소녀였다.

올해 초 방송된 드라마 '후아유'에서 일진 강소영 역으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게 결코 우연은 아니다. '들꽃'은 드라마보다 앞서 촬영됐다. '들꽃'으로 조수향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낚아챘다. 당시 심사위원 김희애는 "이 배우를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막내 정하담 역시 충무로의 기대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박석영 감독에 따르면, 정하담은 극 중 하담의 옷을 입고 한 달간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열정은 고스란히 스크린에 녹아났다. 이를 두고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트레이닝 받지 않은 그녀의 연기에는 진정성이 녹아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갈 곳 없는 소녀들의 불안함과 외로움을 묵묵히 담은 '들꽃'은 '스틸플라워' '재꽃'으로 이어지는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의 첫 번째다. 부산영화제, 런던한국영화제, 스위스제네바블랙무비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초청,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다. 

사진=인디플러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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