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에 사로잡히다

입력 : 2016-04-19 19:11:17 수정 : 2016-04-21 15: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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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리빙 퍼퓸 브랜드 '밀레피오리'. 김경현 기자 view@

어떤 매장에 들어섰을 때 '향기가 독특하네!'라고 한 번쯤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장이나 물건에서 향기가 날 경우,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후각은 그 어떤 감각보다도 더욱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지갑을 여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만져 보고 맡아 보고 맛보고. 감각 마케팅이 대세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중에서도 향기 마케팅은 날로 진화하는 추세다. 본래 향기 마케팅은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소매점, 자동차 전시장, 병원, 심지어 공연장 등에서도 향기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집 안팎에 향기가 넘친다

30세 패션 에디터 A 씨. 방에서는 '무인양품' 히노키 향 디퓨저를 쓴다. 화장실과 거실에는 '쿰바' 향초를 주로 켠다. 35세 회사원 B 씨. 현관과 방에는 은은한 나무 향 디퓨저를 두고, 주말에는 옷 방에 서너 시간씩 향초를 태워 향이 배게 한다. DJ인 33세 C 씨. 욕실은 '러시' 비누 향이 강해서 방향제를 따로 두지 않는다. 패션 홍보 일을 하는 37세 D 씨. 환기가 필요할 땐 '메종 데 부지' 룸 스프레이를 애용한다….

화장품 매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감성을 자극하고 지갑을 열게 하는 향기
자동차 전시장과 공연장에도 퍼지고 있다
강렬한 '향기 마케팅' 현장을 찾았다


한 월간지가 실시한 질문지에 등장하는 '방향 제품을 쓰나'에 대한 답이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아주 다양하게 향기를 누리는 모습이다.

북유럽 플라워 브랜드 '꾸까(kukka)'는 정기적으로 꽃을 보내 주는 플라워 서비스를 국내에 론칭해 주목 받았다. 지난 15~17일 사흘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3층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에는 300여 명이 방문, 이 중 47명이 원하는 시기에 정기적으로 꽃을 배달 받는 신청서를 냈다. 향기의 대명사 꽃을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48세 화가 E 씨. 얼마 전 매연으로 가득 찬 하마정 교차로 인근을 지나다가 좋은 향기가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가 길거리에 놓아둔 허브 화분을 발견했다. 순간적이었지만 위안을 받았다. 향기는 단순히 기분 좋은 향 이상으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브랜드별로 각각 다른 향기

지난달 새롭게 문을 연 신세계 센텀시티몰. 막 준공한 건물 냄새가 아직은 코끝에 느껴진다. 브랜드 이미지도 높이고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의 하나로 '후각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몇몇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생활용품 전문관인 '더라이프'는 주 고객인 여성의 편안한 쇼핑 분위기를 위해 총 20대의 디스펜서(분사기)에서 8분에 한 번 30mL씩 '봄의 아침(Morning of Spring)'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일렉트로 마트' 에선 다양한 전자제품과 드론, 피겨를 갖춘 매장답게 20~30대 남성이 좋아할 만한 우디 계열의 '워크 인 더 우즈(Walk in the Woods)'향을 입혔다. '캐스키드슨' 매장에 들어서면 소녀의 순수한 감성을 향기로 전환한 청초한 프리지어 향이, 액세서리 SPA '라템'에선 '불가리안 로즈' 향이 고객의 발길을 한순간이라도 더 잡아 두고자 한다. 애견 및 애묘 용품은 물론 분양과 애견 호텔, 애견 미용실까지 갖춘 '몰리스' 펫 숍은 잡냄새 제거 등 소취 기능이 추가된 '화이트 티 앤 타임' 향기를 선택했다. 몰 입구에 위치한 모모스 커피숍도 고객의 주 이동선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커피 머신을 놓아 고객이 냄새를 맡고 자연스럽게 내방하게 끔 유도한다. 
반려동물 원스톱 쇼핑 숍 '몰리스' 센텀시티몰. 김경현 기자
향기 마케팅은 백화점 바깥의 화장품 로드 숍에서도 진행 중이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주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에뛰드 하우스'에 가면 복숭아 향이 난다. 반면 '아리따움' 매장에는 라벤더 향, '이니스프리'에선 삼나무 향이 주를 이룬다. 이는 화장품 자체 냄새라기보다는 전략적인 마케팅으로 '배치'된 향기다.

■자동차 전시장·병원·공연장에도 향기

향기 마케팅은 자동차 전시장, 공연장, 병원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부산 해운대 벤틀리 매장에선 향기 마케팅 전문 기업 '센트온'에서 관리 중인 '화이트 티(White tea)' 향기를 만날 수 있다. 매장 직원 권지혜 씨는 "전시장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21일 부산 공연을 앞둔 윤석화 주연 연극 '마스터 클래스' 무대 설치와 점검이 한창이었던 19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도 센트온 관계자들이 보였다. 윤석화 씨는 자신이 맡은 마리아 칼라스의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표현하면서 센트온이 지원한 백차와 백리향을 혼합한 플로럴 계열의 '화이트 티 앤 타임' 향을 공연장 곳곳에 배치하기로 했다. 
윤석화 주연 연극 '마스터 클래스' 한 장면. 부산시민회관 제공
소취 기능이 포함된 향기 마케팅은 병원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아이센트' 박상철 부산지사장은 "부산지역 치과 병원만 해도 20여 곳에서 이용 중인데 유칼립투스, 퓨전, 클린 등 선호하는 향기도 다르다"고 말했다. 센트온 부산지사 이수환 대표는 "요양병원과 은행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주택공사 부산지사 도서자료실처럼 책 소독 기능에 레몬 향을 섞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의 경우, 웨스틴호텔만의 시그니처(Signature) 향기로 고급스러운 호텔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김활란 뮤제네프'도 헤어&메이크업 살롱 최초로 '레흐 뒤 뮤제네프' 시그니처 룸 스프레이를 출시해 해운대 스타제이드점과 파크하얏트점에서 활용하고 있다. '더베이101'도 세계적인 조향사 크리스토프 로다미엘이 전속사로 있는 '아이센트'에 의뢰해 해운대 바다 향을 담은 시그니처 캔들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를 지난해 12월부터 판매 중이다. 향은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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