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완성은 향 난 향기를 기억한다"

입력 : 2016-04-19 19:11:22 수정 : 2016-04-22 11: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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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로다미엘 수석 조향사

향기에도 유행이 있을까? 부산의 핫 플레이스 '더베이 101'의 시그니처(Signature) 캔들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 론칭 기념으로 부산에 온 향기 아티스트이자 글로벌 센트 마케팅 전문기업 '아이센트'의 전속 조향사 크리스토프 로다미엘(47)을 얼마 전 만났다. 그는 "패션처럼 향의 세계에도 유행이 있지만 사실인 듯 사실이 아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질문에 대답했다.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기자에게 그는 "유행을 100% 신뢰할 수 없지만 올해는 우디 노트(Woody Note·나무와 목재 등이 가지는 향)와 시트러스 노트(Citrus Note·감귤이 가지는 상큼한 과일 향)를 꼽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연설명으로, 우디 계열의 다크 우드, 시트러스 계열의 만다린 레몬 라임 오렌지 베르가모트 향을 특별히 언급했다.

여기서 잠깐, 향수 혹은 향기 용어로 등장하는 '노트(Note)'라는 말을 알아보자.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하기 마련인데, 이때의 향을 노트라고 말한다. 향수를 뿌려서 바로 맡을 수 있는 향이 탑 노트(Top Note), 그리고 체취와 섞인 주된 향인 미들 노트(Middle Note), 마지막으로 잔향인 베이스 노트(Base Note)로 분류된다.

다시 로다미엘 이야기로 돌아가서 '메이크 어 위시' 향초에 들어간 재료와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렸는지 물었다. 하나의 향기를 만드는데 짧게는 3분, 길게는 3년이 걸린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메이크 어 위시'는 5~6개월이 걸린 것 같다. 스토리부터 향의 원료까지 구상하고 실험하기 때문에 간단하지는 않다. 재료도 삼나무, 송진, 라벤더, 탱자꽃, 일본배, 미역, 시클라멘, 베르가모트 등 대표적인 재료 8가지를 비롯해 40여 가지가 들어갔다. 해운대 바닷바람을 모티브로 시트러스와 플로럴(Floral·꽃이 발산하는 향의 총칭) 향을 밝고 활력 있는 더베이의 색깔로 표현했다."

조향은 요리처럼 한 가지를 메인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40여 가지 재료는 많은 편이 아니어서 108가지를 넣어서 만든 향도 있단다. 조향사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프랑스 국립 화학 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하고, 화학 석사를 수석졸업했으며, 하버드대학 조교까지 역임한 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조향사가 된 배경도 궁금했다. "원래는 화학을 전공했지만 향을 좋아해서 조향사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프랑스 클레르 몽 페랑에서 태어나 뉴칼레도니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으며, 베이비 시터는 태국 출신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향이 있을까? "샤넬의 '에고이스트'를 좋아한다. 시나몬이 많이 들어가 있다. 달콤한데 바닐라는 아니고, 다크 우드 같다." 수백, 수천 가지 향은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와 영화 대사, 노래를 외우 듯 나는 향기를 기억한다. 지난 20년간 쓴 향기 노트만 해도 2천 권이 넘는다. 그 안에는 수많은 향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후엔 레시피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100~200개의 포뮬러(향수 제조 공식)로 향을 조합한다. 내 컴퓨터엔 6천 개가 넘는 포뮬러가 저장돼 있다."

정확한 직함을 물었다. "마스터 퍼퓨머(Master Perfumer·수석 조향사) 혹은 센트 컴포저(Scent composer·향기 작곡가)로 불러주면 좋겠다. 곡을 작곡하듯 공기 중의 향을 조각한다는 의미다. 그냥 퍼퓨머라고 하면 무거운 향을 만드는 느낌이고, 향수를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서 포괄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에스티 로더, 랄프 로렌, 버버리, 톰 포드 등 지난 20년간 그가 협업한 유명 브랜드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가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도 향과 예술의 접목이었고, 향으로 연출하는 공간(space scenting)을 시도한 덕분임을 상기했다. "공간의 완성은 향이다. 공간에도 향기라는 품격을 채울 수 있는데 왜 많은 퍼퓨머들이 놓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건물을 지을 때 조명, 인테리어를 고민하듯 어떤 향기를 쓸지도 고민해야 할 거다."

이 밖에 로다미엘은 2009년 뉴욕과 빌바오에 위치한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최초의 향기 오페라를 선보였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딜론 갤러리에서 후각 아트(olfactory art)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비영리 조향 학교도 설립했다. 최근에는 미래의 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향기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주고받는 기술도 이미 나왔다"면서 "앞으로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듯 향기를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향기는 치료 수단이기도 하다. 그는 "냄새는 뇌 신경세포를 자극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낸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병 진행을 늦추거나 자폐아동 치료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향사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을까? "끈기가 있어야 하고, 어떤 일이 닥쳐도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정교해야 한다. 이 향 저 향을 섞었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학도 알아야 한다. 숫자와도 친해져야 한다. 부엌에선 1티스푼을 이야기하지만 조향은 0.0007분의 1을 이야기한다. 100여 가지도 넘는 재료를 섞어서 세상에 없는 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김은영 선임기자· 사진=김병집 기자 b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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