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이칸저칸 ] '아가씨', 박찬욱 감독이 그려낸 에로티시즘의 변화
입력 : 2016-05-15 20:20:04 수정 : 2016-05-16 08:07:33
14일 오전 8시 30분과 저녁 10시(칸 현지시각), 두 차례에 걸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공개됐다. 수천 명의 관객들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57회, <올드보이>)을 수상한 바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보기 위해 뤼미에르 극장을 가득 메웠다.
<아가씨>는 사라 워터스의 장편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작품으로 귀족출신 아가씨와 그녀의 돈을 노리는 사기꾼, 그리고 그가 아가씨에게 데려온 하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하녀가, 2부는 아가씨가 내레이터로 등장해 각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후, 3부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속고 속이는 동안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엉켜있던 감정들이 풀어지면서 이야기는 반전이라는 깃발을 돌아 해피엔딩을 향해 내달린다. 장르 영화의 컨벤션이 많고, 명쾌한 결말을 추구했다는 점 등에서 경쟁 부문에서는 보기 드문 성격의 작품으로, 145분의 러닝 타임 동안 다양한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전작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같은 공간과 상황을 다르게 변주해내는 촬영,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내러티브를 드라마틱하게 이끌어가는 음악, 요소요소에서 호흡과 긴장을 적절히 조절하는 조형주의적 편집 등이 과연 박찬욱 감독의 작품임을 느끼게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에로티시즘의 진화다. <박쥐>(2009), <스토커>(2013) 등을 통해 성애(性愛)의 욕망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던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에서 더욱 농익은 감각으로 이야기의 흉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수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압델라티프 케시시)를 상기시키는 첫 베드신에서는 두 여성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은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상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흐르는 물감의 데칼코마니처럼 한 프레임 안에 구현해낸 대칭적 미장센은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하나하나가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은 아가씨와 하녀가 닮아가고, 바뀌고, 동화되는 서사와 긴밀하게 연동된다.
특히 두 사람이 정사를 나누는 장면들-특히 마지막 정사-에서는 그들이 거울이미지의 주체이자 대상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아가씨와 하녀 모두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금기 혹은 내적 갈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기만해야 하는 게임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을 뿐이다. 이것은 시대적 배경을 애국주의적 주제의 도구로 사용하기 꺼려하고 있다는 점과 함께 이 영화를 상당히 특수한 자리에 위치시킨다.
특정 작품이 논쟁적이라는 것은 -단점보다- 장점에 가깝고 -괴롭기보다- 즐거운 일이다. 감독의 전작들을 감안할 때 수그러들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가씨>는 여성의 성(性)과 생(生)에 대한 그의 탐구가 절정에 달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대담한 몇 가지의 시도들이 썩 나쁘지 않았다. 글, 사진=칸(프랑스), 윤성은 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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