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칸 영화제가 22일 오후(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한국영화 수상의 기대는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애초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 본인이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역대 칸영화제 수상작들, 넓게는 경쟁부문 진출작들과도 다른 성격의 영화였다.
그러나 스타일리시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왔던 조지 밀러 심사위원장의 성향과 경쟁작들 중 출중하다고 할 만한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점 등이 '아가씨' 수상에 대한 기대를 높여왔다. 결과적으로 서운함은 남지만, 실리는 확실히 챙겼다. '아가씨'는 175개국에 판매되었고, 곧 전세계의 관객들을 차례로 만날 것이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감독이 일생 동안 천착해온 주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 15분 정도는 그의 진정성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평범한 시민이자 노동자의 삶을 뼛속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 작품은 개막식 다음 날 상영되었지만 이후 선보인 스무 편의 경쟁작들 속에서도 끝까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와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It's Only The End Of The World) 수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한데, 각자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시도였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아사야스는 나름의 마니악한 오컬트 무비를 만들었고, 자비에 돌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요한 클로즈 업의 연결로 한 편의 연극 같은 영화를 완성시켰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감독상을 공동수상한 크리스티앙 문쥬 또한 자신의 전작들과는 다른, 훨씬 유화된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올해의 심사위원들에게는 이런 기준이 크게 어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마렌 아데 감독의 '토니 어드만'(Tony Erdman)이 수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칸 영화제는 작년 파리 테러의 여파로 더욱 삼엄한 경계 속에 치러졌다. 상근 경찰들은 물론이요 무장 군인도 자주 눈에 띄었고, 소지품 검사도 꽤나 까다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사고를 미연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며 축제는 축제였다.
지난 열 이틀간 이 아름다운 휴양 도시는 음악과 불빛과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특히 관객들까지도 턱시도나 드레스를 입고 입장해야 하는 프리미어 상영의 전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를 보려면 멋지게 차려 입는 수고를 하라는 규정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겠지만-실제로 올해 줄리아 로버츠는 레드 카펫에 맨발로 입장함으로써 엄격한 드레스 코드에 저항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보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복장을 갖추는 것은 영화 관람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만든 이들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는 하나의 제스쳐가 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그런 호들갑은 떨지 않아’라고 말하는 여타 영화제 관계자들의 빈정거림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칸 영화제는 이런 격식이 컨셉트인 영화제다.
볼 때마다 가슴 설렜던 영화 시작 직전의 레드 카펫 트레일러, 스태프들의 태도와 행사 진행까지 모든 것이 우아하고 품격 있는 영화제. 이것이 칸을 처음 방문한 나의 소회다. 콩깍지가 영영 벗겨지지 않기를 바랄 뿐.
사진=칸 영화제 제공
칸(프랑스)=윤성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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