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감독 '가려진 시간', 왜 세월호 참사 반영됐을까

입력 : 2016-11-26 20:45:01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엄태화 감독은 영화 '가려진 시간' 시나리오를 쓸 당시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겪고 그것을 작품에 나타냈다. 쇼박스 제공


엄태화(35) 감독은 무서운 신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을 보면 거장 박찬욱 감독이 떠오를 정도. 엄 감독은 스스로 박 감독의 제자(‘친절한 금자씨’ 조연출)라 밝히지만 궤를 달리한다. 엄 감독은 판타지를 감성적으로 터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상까지 반영한다. ‘가려진 시간’ ‘잉투기’(친동생 엄태구 주연) 등에서 비현실과 현실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는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지도 고민한다.
 
그는 ‘친절한 금자씨’(2005)와 ‘쓰리, 몬스터’(2004) 조연출을 거쳐 단편 ‘숲’으로 2012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첫 장편 ‘잉투기’와 상업 데뷔작 ‘가려진 시간’은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문 신선한 소재라 주목 받았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작 ‘가려진 시간’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남자(강동원)를 믿어주는 한 소녀(신은수)의 이야기다. 믿음과 사랑에 대한 스토리라 긴 여운을 남긴다.

‘잉투기’에 이어 ‘가려진 시간’까지 소재의 독창성은 물론 시대상을 반영(세월호 참사)해 돋보이는 작품. 엄 감독은 지난 21일 SBS 라디오 ‘박선영의 씨네타운’에 출연해 “2014년 온 국민이 트라우마에 빠진 사건이 있었는데 나 역시 충격 받았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트라우마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 같다”고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그는 라디오뿐 아니라 본보와 인터뷰에서도 혹여 유가족에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로 세월호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당시 느낀 충격과 안타까움을 ‘가려진 시간’ OST로 나타냈다. 엔딩크레딧에 삽입된 ‘바다가 된 너’ 가사를 직접 썼고 ‘너는 바다가 되어 조용한 파도로 내게..’라는 소절로 그 마음을 담아냈다. 이렇듯 자신이 연출한 작품 OST 가사에도 신경 쓰는 엄태화 감독의 영화철학과 작품세계를 인터뷰를 통해 파헤쳐봤다.
 

-부산에서 ‘검사외전’ 촬영 중이던 강동원을 어떻게 설득했나. 그를 만나기 위해 직접 내려갔다고 했는데.

▲사실 말로는 직접 설득한 적은 없다. 시나리오를 보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전부 읽는다고 하더라. 그가 시나리오(엄 감독이 썼다)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고 부산에 내려가 만나게 됐다. 만나기 전부터 왜 이 영화가 강동원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더라. 신인감독에 신생 제작사인데다 신인여배우(신은수), 게다가 강동원은 영화 시작한 지 40분에 나온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영화는 충무로에 나와야 한다”며 출연하겠다고 했다. 본인이 이 영화에 참여하면 힘을 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멋진 선택이었다.
 
-강동원이 작품에 열정적으로 임했고 그의 도움이 컸다고.

▲아무래도 그는 영화도 다수 찍었고 현장 경험도 많기에 도움을 받았다. 그는 제작자 수준으로 영화계를 꿰뚫고 있다. 나이도 동갑이라 현장에서 대화를 자주 하며 촬영했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그가 투자사나 관계자를 설득해 추가된 촬영들도 있었다. 투자를 더 받아야 찍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시나리오에서 그 장면을 생략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강동원의 도움이 컸다. 이 작품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다.     
 

-홍익대 광고디자인과 출신이라는 점이 이번 작품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많지 않은 예산임에도 완성도 있는 비주얼을 선보인다. 디자인과를 다니다 영화감독이 된 건데 계기가 있었나.

▲고교시절 광고디자인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술입시를 준비한 건 아니다. 성적이 돼서 지원했다.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너무 상업적이고 도식적인 게 싫어 광고디자인에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는 영화 미술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게 결정적 계기다.
 
안 그래도 어릴 때 친구들한테 “만화 ‘드래곤볼’ 속편을 일본에 가서 직접 봤다”고 거짓말하고 이야기를 꾸며내 들려주곤 했다. 그런 걸 무척 재미있어 했는데 영화 미술팀을 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구현되는 게 재밌더라. 이후 마침 학교에 영상영화학과도 신설됐고 졸업작품도 영화로 했다. 어릴 적 경험들이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내가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 촬영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담겨있더라.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다.
 
-그렇다면 ‘가려진 시간’은 엄 감독의 어린 시절 어느 때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영향을 받아 연출했다. 3~4년 동안 뉴스를 보기 힘들더라. 이 작품은 한 남자(강동원)를 믿어주는 소녀(신은수)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도 누군가를 믿기 힘들다. 시대상이 반영된 거다. 내겐 사회현상 같은 게 중요한데 그게 나중에 영화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내가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쌍하다. 사람들에게서 연민을 느낀다. 
 

-‘가려진 시간’에는 섬이 배경이라 바다나 동굴 우물과 물방울 등 물이 줄곧 등장한다. 극중 물에 빠지는 아이들 등 세월호 참사가 생각나더라. 영화를 본 사람들이 “물과 아이들의 이야기다 보니 세월호가 떠오른다”고 하더라. 당시 시나리오 작업했던 시기가 세월호 참사(2014) 때였다.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 장면에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도 보인다. 

▲내 경험들이 작품에 투영되는데 아마 (세월호 참사가) 간접적으로라도 영향 받았을 것이다. 무의식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참고하진 않았다. 영화 속 강동원 첫 등장 전까지의 ‘모험 떠난 소년들’ 설정은 스필버그 감독이 작품에 자주 쓴 것이다. 또 아역배우들에게 참고하라는 의미로 영화 ‘스탠바이 미’(감독 롭 라이너)도 보여줬다.    
 
-꿈을 통해 본 장면을 나중에 영화로 표현한다고 하더라. 꿈일기도 쓴다던데.

▲보고 느끼고 하는 것들이 나한테 한 번 들어왔다가 재조합돼 다른 이야기로 기록되는데 그게 신기하다. 꿈일기는 안 쓴다. 다만 인상 깊은 꿈만 써놓는다. 나중에 꿈을 써놓은 걸 읽어보면 그때 내가 뭘 겪었는지 생각나더라. 꿈에서 어릴 때 살던 동네가 나오는데 최근 그곳에 간 적이 있다. 비현실의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 들더라. 그런 느낌이 재밌다. 꿈이 현실도피일 수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 꿈을 예지(몽)보다는 재창조로 받아들인다. 꿈이 가끔 이상하게 맞을 때도 있다.
 
홍정원 기자 mama@

< 저작권자 ⓒ 부산일보(www.busa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