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가 자신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인기곡 'Creep'(이하 '크립')을 부르지 않는 아이러니한 까닭이 공개됐다.
9일 방송된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라디오 헤드가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크립'을 부르지 않기로 결심한 과정이 소개됐다.
라디오 헤드는 1992년 '크립'을 발표한 뒤 1998년 이후에는 해당 곡을 부른 게 10여년 동안 단 10회 정도에 그친다.
2009년 이후 7년 동안은 한번도 부르지 않다가 2016년이 되서야 새 앨범을 발매하는 공연에서만 이 노래를 선보였다.
2014년 한 잡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크립'을 왜 부르지 않냐"는 관객의 질문에 "싫증이 났다"고 답했다는 내용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라디오 헤드의 멤버들은 데뷔 전부터 음반 제작자인 션 슬레이드와 싱글 앨범을 꾸리던 중 의견 마찰을 빚어 이 곡을 탐탁치 않아했다.
앨범을 꾸리던 당시 '크립'을 타이틀로 선정하자고 했지만, 멤버들은 '크립'의 우울한 분위기가 자신들이 지향하던 음악 스타일과는 매우 다르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제작자는 멤버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크립'을 타이틀에 내세웠다.
이에 기타리스트 '조니 그리스트'는 녹음 당시 일부로 귀를 찢는 듯한 소리를 녹음했다고 한다.
발표 당시에는 영국 싱글차트에서 78위, 앨범 6천장이 판매되는 등 반응이 미미했지만, 1년 후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인기는 미국까지 퍼졌고, 급기야 전 세계에 '크립' 열풍이 불게 됐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5년, 두번째 앨범 '페이크 플라스틱 트리' 역시 평론가들에게 역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라고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라디오 헤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관객들은 여전히 '크립'만을 원했던 것. '크립'만을 듣고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들이 수두룩해지는가 하면, 기자간담회에서도 "'크립'과 비슷한 색깔의 음악이 있나" "'크립'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등 여전히 '크립'에만 이목이 몰렸다.
이에 멤버들은 한곡의 노래만 반짝 인기를 끌고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어떤 공연에서든 '크립'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1998년 이후 공연리스트에서 이 곡은 사라졌다. 인터뷰 역시 '크립'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조건에 한해서만 응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현재의 라디오헤드는 그들이 '크립'을 포기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팬들은 라디오헤드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크립'을 라이브로 볼 수 없는 것에 아쉬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라디오헤드의 최고의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홍규 기자 4067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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