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방북한 우리 측 대북특별사절단에 비핵화를 논의하는 북·미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조만간 북-미가 대좌하는 테이블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특사단 수석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발표한 북측과의 합의 결과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대해 "선대의 유훈"이라며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는 비핵화에 대해서도 북·미관계 정상화와 함께 논의 의제로 다룰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체제 보장되면 비핵화 가능
대화 중엔 추가 도발 없어"
김정은, 북-미 대화에 적극성
기존 입장 엎은 파격적 발언
"北 그동안 번번이 합의 번복
입장 변화 두고 봐야" 견해도
발언만 본다면 북·미 대화에 상당한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헌법에 '핵 보유국'을 명시한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 놓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해왔고,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만 응하겠다는 미국 측 요구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맞서왔다. 이런 기류를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이번 비핵화 관련 언급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온 정 실장 역시 미국과 협의를 해봐야 한다는 전제를 깔긴 했지만 "북·미 대화를 시작할 충분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밝힐 정도다.
이에 더해 북한은 대화 국면이 지속되는 동안에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시일 시험발사 등 도발 행위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우리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는 이른바 모라토리엄(유예) 정도만 밝혀도 북·미 대화의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는데, 이보다 한발 더 나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입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은 그동안 우리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와도 비핵화와 관련한 다양한 합의를 했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 등을 문제 삼아 번번히 합의를 깨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과 특사단 면담이 있은 다음 날인 6일 '미제의 반인륜적인 핵 범죄 역사를 끝장내야 한다'는 제목의 정세 논설에서 "현실은 우리 국가가 미국의 가증되는 핵 위협에 대처하여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강화해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를 실증해 주고 있다"며 "우리의 핵 무력은 미국의 극악한 핵 범죄 역사를 끝장낼 정의의 보검"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합의와 다르게 '핵 보유국' 의지를 재차 천명한 것이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이번 특사단에게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까지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한 부분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북측은 자신들의 핵 개발을 '적화통일용'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 남측이 아닌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적 성격임을 누차 강조해왔는데, 이번에 재래식 무기까지 언급한 것은 이런 의도를 보다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기존 행태를 볼 때 이런 약속은 앞으로의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국지 도발을 제어할 수 있는 고리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