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꼬집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은 원래 군대용어다. 야간전투 시 조명탄이 터지는 상황에서 움직이거나 빛이 반사되는 물체는 적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빛이 반사될 수 있는 소총을 배 쪽으로 깔고 바짝 엎드려 꼼짝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때 구령이 복지부동이다. 총탄과 포탄을 피해 복지부동 상태에서 기어가면 포복이 된다. 총소리만 들려도 납작 엎드리는 게 본능이라 훈련이 필요 없는 게 포복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공직사회에 복지부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의 일이다. 한 언론에서 공직사회를 비판하며 처음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직 개혁을 강조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1994년 신경제추진회의를 주재하면서 일할수록 손해라는 공무원의 자조적 자세를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며 복지부동 대신 신바람 행정을 강조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규제 완화를 강도 높게 주문하며 복지부동 타파를 위한 행정쇄신개혁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했다.
공직사회에 복지부동이 등장한 지 올해로 30년을 맞았지만, 그 용어의 생명력은 여전하다. 누구나 복지부동 하면 공직사회를 떠올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로 규제 개혁을 가로막는 공직 내부 분위기를 지적하며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김대중 정부는 ‘기요틴’(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 노무현 정부는 ‘규제 덩어리’, 이명박 정부는 ‘전봇대’,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 문재인 정부는 ‘붉은 깃발’이라는 비유로 규제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때마다 복지부동은 눈알만 굴린다는 ‘복지안동’(伏地眼動), 뇌만 굴린다는 ‘복지뇌동’(伏地腦動),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매지부동’(埋地不動), ‘낙지부동’ 등으로 변주되며 생명력을 과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장·차관 인사를 단행하며 복지부동을 언급했다.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피’를 발탁함으로써 공직사회를 일신하라고 지시하면서다. 공직사회의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한 셈이다. 어찌 보면 복지부동이라는 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청산’이나 ‘코드 맞추기’ 등 권력의 칼바람 때문에 생긴 ‘영혼 없는 공무원’의 생존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복지부동을 깨는 건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맘껏 해 보라’는 리더의 마인드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