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7월의 화가, 프리다

입력 : 2024-07-25 18:04:10 수정 : 2024-07-25 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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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멕시코의 국보급 예술가, 프리다 칼로
평생의 불행 속에서도 자화상에 천착
불꽃 예술혼으로 삶의 고귀함 보여줘

7월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바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그녀의 작품과 생애가 담고 있는 타오르는 열정은 꼭 여름을 닮았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태어나고 사망한 것은 모두 한여름인 7월이었다. 올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특히 지난달 멕시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의 알바레스 관장은 한국을 찾아 국립현대미술관 특강, 한국화랑협회 회장 면담, 윤석남 화가 작업실 방문 등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과 여성 화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화제와 찬사, 관심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피카소가 극찬한 천재, 프랑스 루브르가 최초로 작품을 구입한 중남미 예술가, 1984년 멕시코 정부가 작품 전체를 국보로 지정해 국외 반출을 법으로 금지한 화가, 202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자화상이 412억 원에 낙찰되어 중남미 미술품 최고가 경신…. 바로 그 자화상은 올해 4월 이탈리아에서 개막한 2024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관객을 맞고 있다.

프리다 생전에는 멕시코 벽화 운동을 주도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녀보다 훨씬 더 유명한 화가였다. 프리다는 1939년 프랑스 파리 ‘멕시코전’을 통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는데, 아마 시대를 앞선 화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940년대 그려진 프리다 작품의 가치는 1970년대 여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평가되기 시작했다.

독일계 사진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특별히 아꼈고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리다는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7년간 그녀의 삶은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6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의사의 꿈을 품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끔찍한 교통사고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의사의 꿈을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30여 차례 수술을 하고 모르핀에 의존해 살아가야 했던 그녀의 작품에는 고통, 상처와 함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 비평가들이 그녀 작품을 ‘초현실주의’라고 평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작품은 철저하게 ‘현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프리다 작품의 주제는 출산, 유산, 낙태, 월경 등 당시 서구 미술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성만의 고유한 경험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는 이후 여성주의 운동에서 매우 중요시된 것들이다. 초기 여성주의 운동은 여성들이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자기고백적, 자의식적 작품들이 많은데, 프리다 작품은 이런 초기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프리다 작품은 ‘초현실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수식어보다는 대다수가 ‘자화상’이라는 특징으로 더 잘 설명된다. 사실 자화상만을 평생의 주제로 삼고 끈질기게 그린 화가는 흔치 않다. 영혼의 깊이를 드러내는 걸작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렘브란트나 고흐도 주요 작품을 그리는 도중 간간이 자화상을 그렸던 것이지, 프리다와 같이 전적으로 자화상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프리다 필생의 예술적 주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고 평생 자신을 그리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인생의 고비가 올 때마다 자화상을 그려 자신을 돌아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평생 극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얼마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냈는가를 느낄 수 있다.

프리다는 캔버스 작품으로 여성 자아를 표현하고 남편 디에고는 대규모 벽화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품 양식이나 경향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멕시코 전통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예술 세계는 서로 맥이 닿아 있다. 디에고는 11살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해 20대에는 유럽 거장들의 화풍을 익혔다. 멕시코에도 수많은 벽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인기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 증권거래소 벽화를 주문받아 그리기도 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잘 이해시켜 줄 영화가 한 편 있다.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프리다’(2002년). 놀랍게도 이 영화의 기법은 프리다 작품의 특징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그녀 작품들 모두는 철저히 그녀의 삶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 영화는 작품 이미지를 화면 구성에 자주 사용한다.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고 그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등장인물이 움직이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또, 역으로 움직이던 인물들과 배경들이 그대로 프리다의 그림으로 변한다. 뜨거운 여름, 절망적인 상황과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을 통해 삶의 고귀함을 보여준 프리다 칼로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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