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회복력, 세계서 배운다] 몰락한 석탄 수출항, 반도체 제조 허브에서 길을 찾다

입력 : 2024-09-30 2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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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카디프 : 신산업으로 경기침체를 극복하다
워터 프런트 사업으로 활력 찾고
화합물 반도체 클러스터로 도약
연 5억 파운드 매출 창출 등 결실
죽은 하천 살린 맨체스터도 눈길
환경 회복으로 도시 침체 극복해

영국 웨일스 카디프는 용도폐기된 항만을 친수공간으로 재개발해 갈매기가 비상하는 듯한 모양의 웨일스의회 의사당을 랜드마크로 신축했다. 옛 의사당 건물도 그대로 보존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위). 카디프항의 복합문화공간인 밀레니엄 센터. 영국 웨일스 카디프는 용도폐기된 항만을 친수공간으로 재개발해 갈매기가 비상하는 듯한 모양의 웨일스의회 의사당을 랜드마크로 신축했다. 옛 의사당 건물도 그대로 보존해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위). 카디프항의 복합문화공간인 밀레니엄 센터.

영국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 기자가 도착한 날은 ‘웨일스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다. 재개발이 이뤄진 카디프 항구와 번화가인 세인트메리 스트리트에는 수많은 인파가 오가고 있었다. 한때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서 노숙인과 범죄자들이 들끓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쳐났다.

카디프는 작은 항구 도시에 불과했으나, 1794년 웨일스 남부 지역 제철업자들은 카디프까지 철과 석탄을 운송하기 위하여 운하를 개통하고, 1800년대 웨스트뷰트 부두 건설·철도망 연결 등으로 세계 최대의 석탄 수출항으로 성장했다. 수많은 노예가 드나들고 석탄을 실어나르는 배가 수시로 입출항했으며, 인근에는 조선소와 제철소가 세워져 기계·전기·제분·제지 등 산업화를 이끌면서 1955년에는 웨일스의 수도로 지정됐다.

하지만 1970~1980년대에 석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철강·기계 등 중공업이 쇠퇴하면서 일자리가 급속히 감소하고 인구가 유출됐다. 실업자들은 노숙인이 되거나 범죄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번성기 때 만들어진 부촌과 나머지 지역의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점까지 노출되면서 지역 사회 통합이라는 또다른 과제도 생겼다.

침체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웨일스 정부는 카디프 베이(Cardiff bay) 워터 프런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4년 카디프 베이에 둑을 건설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카디프의 갯벌을 막아 ‘바다호수’를 만들었다. 항구 주변에는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 웨일스 국회의사당, 카디프 베이 오페라하우스, 카디프 주의회, 마운트 스튜어트 광장 등을 새롭게 조성했다. 카디프 베이 주변에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공원녹지가 들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됐다.

문제는 일자리였다. 하드웨어가 거창해도 지역 주민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도시는 침체된다. 카디프시는 경제적으로는 ‘기업 지역’(enterprise zone), 사회적으로는 ‘수용 가능한 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반전을 꾀했다. 대중교통 확충을 통해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카디프 지역 위원회’를 만들어 공공과 민간이 모두 참여해 일자리를 찾고, 주거 안정을 위한 시도에 나섰다.

카디프가 가진 또다른 회복력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실현됐다. 영국 정부는 이곳을 ‘화합물 반도체’(CS·두 종류 이상의 원소로 구성된 반도체) 제조 허브로 만들기 위해 카디프 대학에 9900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CS는 전기 자동차부터 위성 통신, 원격 건강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차세대 기술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카디프 지역의 연구개발 역량과 종합대학(남웨일스 대학, 카디프 대학,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 등이 반도체 분야의 블루오션으로 키우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물론 런던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도 한 몫했다.

2014년 카디프 대학의 혁신 캠퍼스를 시작으로 CS연구소와 CS 제조센터가 모두 설립돼 유럽 최초의 CS 전문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했고, 연간 5억 파운드의 매출을 창출하고 고도로 숙련된 엔지니어 1600명을 고용했다.

2021년 카디프 공대 교수(Lecturer)로 임용된 한국인 최흥재 교수는 “CS연구소는 2013년 처음으로 펀딩을 받아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면서 “제가 소속된 고주파 그룹에서만 교수 14명, 박사 후 과정 10명, 박사 과정 25명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고, 인근 CS 제조업체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취업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기자가 찾은 곳은 환경을 통한 도시 회복력을 보여준 맨체스터이다. 맨체스터는 영국 산업혁명의 발상지. 산업화 초기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제조업체의 발달로 도시 환경은 200년 넘게 매연과 폐수에 시달렸다. 이런 부작용이 해결되기도 전에 20세기 후반기 탈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맨체스터는 빈곤과 실업 문제가 대두됐다. 270만 명에 달하는 도시는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특히 일부 자치구는 오염된 하천과 그 하천의 범람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맨체스터의 ‘최고 회복력 책임자’인 캐서린 올드햄 박사는 “R4C(Resilience for Communities) 프로그램에 따라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 특히 홍수와 잠재적인 폭염에 대비할 수 있도록 회복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올드햄 박사는 침체된 맨체스터의 도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소득 향상과 상업·교통 시설 보다 쾌적한 환경에 초점을 맞췄다.

그 대표적 사례가 도심의 동남쪽에 위치한 메이필드(Mayfield) 공원이다. 이곳은 맨체스터에서 100년 만에 새로 생긴 공원이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메들록강은 17~18세기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그 주변 지역은 산업이 침체되면서 공장들은 비어갔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슬럼 지역으로 변했다. 맨체스터 당국은 이런 곳을 방치한 채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자연 복원과 문화 공간 조성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었다. 그런 노력 끝에 2018년에는 맑은 물에서 사는 큰가시고기와 피라미 등이 다시 발견되었다. 공원 인근의 빈 공장은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장과 갤러리로 변모했다.

기자가 메이필드 공원을 찾았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맨체스터 시민들은 약한 빗줄기 속에서 가벼운 복장으로 조깅을 했다. 인근 지역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공원에서 매일 밤 공연이 열리고, 야외 식당이 운영되면서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맨체스터는 썩어가는 하천을 휴식과 위안을 주고,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공원으로 변모시켜 도시의 환경 회복력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카디프·맨체스터/글·사진=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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