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확실해지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이전 바이든 정부와 180도 뒤바뀌게 됐다.
한국이 당장 영향을 받는 분야는 안보다. 1기 집권 당시에도 트럼프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너무 적다는 평가와 함께 5배를 인상한 ‘5조 청구서’를 제시했고, 난색을 표명하는 우리 정부를 향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여기는 태도는 2기 집권에도 고스란히 재연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인터뷰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부유한 국가)이라고 지칭하면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6000억 원)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했다. 앞서 한미는 지난 4일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체결했는데, 100억 달러는 한미가 타결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1조 5192억 원)의 9배에 달하는 액수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이번에 의회 권력까지 장악한 트럼프는 국방수권법안(NDAA)을 개정하고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 카드를 꺼내면서 우리 측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보다는 방위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미 관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1기 시절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진 트럼프는 지금껏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자신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최근에도 “언론은 난리를 치겠지만 그것(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게 아니다”라면서 “(북한에)많은 핵무기가 있지만 우리는 잘 지냈고 여러분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가 북미 직거래를 할 경우 당장 한반도의 분쟁 압력은 떨어지겠지만, 핵 보유를 인정받은 북한의 존재는 우리에게 엄청난 안보 위협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복귀로 예상되는 안보 위기 국면을 자체 핵무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외 경제에서 강력한 미국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 시대가 다시 도래하면서 통상 마찰 우려도 커졌다. 현재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는 국가로는 흑자 규모 기준으로 중국이 1위, 멕시코가 2위이며, 한국은 8위다. 이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기업들에 미국산 석유와 가스 구매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집권 시 우리 기업에 직접적 타격이 예상되는 사안은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다. 트럼프는 경선 때부터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IRA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차례 펼쳤고, 대선에 당선된다면 취임과 동시에 현 정부의 전기차 세제 혜택 지원 정책 등을 폐지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재생에너지의 지원과 혜택을 축소하는 대신 화석연료와 원전 생산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는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반도체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칩스법’에 대해서도 극히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전기차 활성화 정책을 감안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한화솔루션 등 완성차와 배터리, 태양광 업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