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 2025-12-08 09:00:00
지난 4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 포럼에서 한양대 박성복(마이크 든 이)교수가 '레이터러시' 교육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제공
영상물 시청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영상물을 TV나 영화관에서만 접하던 시대를 지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물론이고 유튜브나 숏폼,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 디지털 환경 플랫폼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 규제 위주의 등급 분류 정책만으로는 유해 영상물에 일일이 대응하기 힘든 시대이다.
이런 여건 변화에 맞춰 이용자 스스로 영상물 대응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레이터러시’ 교육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한양대 미디어학과 박성복 교수는 지난 4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주최로 열린 ‘디지털 플랫폼 시대, 등급 분류의 변화와 확장’ 포럼 발제를 통해 ‘레이터러시’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레이터러시’는 등급 분류를 뜻하는 레이팅(rating)과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literacy)의 합성어로, 영상물 등급 분류에 특화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일컫는다. 박성복 교수는 “레이터러시는 등급 분류의 근거가 되는 7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영상물의 효과와 영향력을 분석·식별해 영등위 등급을 적용받는 영상물은 물론 유튜브, 숏폼 콘텐츠 등 등급 사각지대 영상물까지 아울러 나이와 정서, 감성에 맞게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을 갖추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 포럼에서 한양대 박성복 교수가 '레이터러시' 교육 제안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희돈 기자
박 교수가 레이터러시 개념을 착안한 건 영등위 의뢰로 영상물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한 교재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이미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이름으로 언론진흥재단이나 시청자미디어재단 같은 곳에서 관련 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내용도 두루뭉술해 영상물 수용에 특화된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문제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현재 ‘레이터러시’ 개념을 적용한 세 종류의 교재와 교사용 지도서를 함께 개발하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용 교재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유해 영상물에 가장 노출되기 쉬운 청소년 스스로 영상물의 유해 여부를 선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둔 교재다. 영유아에 특화된 교재도 현재 최종 점검 과정에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내년 중 일선 학교에서 이 교재를 통한 수업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단순히 교육하는 것에서 나아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사후 검증을 통해 지속 보완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상물등급위원회 포럼 참가자들이 종합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제공
이날 포럼에서 ‘페어런츠(부모) 가이드를 위한 영상물 등급 분류 서비스 개선 방안’을 발제한 청운대 김미경 교수는 현재 4단계(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18세 이상 관람가)인 영등위의 등급 분류가 너무 광범위하다면서 “영상물 노출 나이가 낮아지는 추세에 맞게 7세 등급을 신설하는 등 전체관람가 등급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동의대 원숙경 교수는 해외 주요 국가의 온라인 콘텐츠 등급 분류 제도를 소개하며 “기존의 사전 규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등급 정보 제공 확대를 위한 체계 구축과 플랫폼 책임 강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종합 토론에서는 한양사이버대 김광재 교수가 좌장으로 강영은 어린이재단 변호사, 곽규태 순천향대 교수, 김종화 티빙 팀장,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상호 경성대 교수, 이창세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 위원,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이 패널로 참여해 현 등급 분류 제도의 보완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김병재 영등위원장은 “영상물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비되는 시기 기존 등급 분류 제도로는 한계가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면서 “레이터러시 교육을 포함해 포럼에서 논의된 제안을 잘 반영해 이용자 보호와 선택권 확대를 위해 힘쓰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