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께서 이 편지를 읽으실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최근의 한일관계를 우려하는 마음에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의 팜비치까지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 골프를 즐기면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저는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지금 한국은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로 인해 작년 12월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정상회담도 취소되었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양국 외교장관에서 오랜 현안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졌지만, 합의는 지금 좌초 위기에 있습니다.
당시 합의에 따라 일본정부는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을 거출했으며, 재단은 피해자에 대한 현금 지급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일부 위안부 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은 합의 무효, 나아가 10억 엔의 반환과 재단의 해산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6년 12월 30일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6일 일본정부는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고 교섭 중이던 한일 통화스와프협상도 중단시켰습니다.
통화스와프 협상의 중단은 역사문제와 경제사회문제를 분리하자는 지금까지의 일본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일입니다. 일시 귀국한 나가미네 대사는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소녀상의 이전 혹은 이전 약속을 받을 때까지 부임한지 6개월도 되지 않은 대사를 귀임시키지 않을 생각이신지요? 귀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한국 여론의 반발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귀임 후 대사 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입니다.
지난 1월 2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총리께서는 "우리나라는 이(한일 위안부) 합의를 성실하게 실행해왔으며, 일본 측의 의무는 모두 다해왔다"면서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한국 측에 요구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총리께서 말씀하신 일본 측의 의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합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봤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은 일본정부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표명했습니다.
"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②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구체적으로는 한국정부가 前 위안부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③ 일본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②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위 내용은 일본 외무성이 발표한 한국어 자료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윤병세 외교장관은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하고,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정부의 우려를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하게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군의 관여 하에 이뤄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총리가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정부가 10억 엔 정도를 거출해 모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을 양국이 협력하여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정부 설립 재단에 대한 일본정부의 자금 거출과 소녀상 이전,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단어들만 일본 언론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내에서는 10억 엔의 자금 거출을 조건으로 소녀상의 이전에 한국정부가 동의하는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면 거래는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실제로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총리께서 일본 측이 다했다고 말씀하신 `의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그것이 바로 한국 측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10억 엔의 거출을 뜻하는 것인가요?
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총리의 사죄 편지를 전달하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총리께서는 2016년 10월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총리의 이 발언은 한국 국민들을 분노시켰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총리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총리의 사죄 편지 전달을 요구했던 일본 시민단체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강한 어조로 총리의 직접적인 사죄 표명을 거부하셨던 이유는 무엇인지요?
한국 내에서는 기시다 외상을 통한 간접적인 사죄와 반성 표명이라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총리의 사죄 편지는 합의에 비판적인 한국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총리께서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바라신다면 나가미네 대사를 조속히 한국으로 돌려보내시고 대사가 직접 피해자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하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국민들은 그런 총리의 용기를 높이 평가할 것이며, 소녀상 이전문제도 자연스럽게 공론화될 것입니다.
총리의 영단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한일 두 정상이 골프를 함께 즐기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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