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 2024-12-29 18:01:05
국내 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 부진 속에 계엄 사태 이후 불거진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며 한 마디로 ‘대혼돈’을 겪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진입을 목전에 뒀고, 연말이면 나타났던 산타랠리(연말 증시가 오르는 현상)는 자취를 감췄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7원 오른 1467.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이날 환율은 무려 20원 넘게 출렁였다. 오전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시 한 번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원달러 환율은 1486.7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외환당국의 조정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출회해 1460원대에서 장을 마쳤지만, 만약 개입이 없었다면 1500원에 육박했을 것이란 것이 시장의 관측이다.
하지만 주간 거래 마감 후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결정되자 원달러 환율은 다시 큰 폭으로 올라 147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정부의 시장 안정화 조치로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감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재의 환율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스피 지수는 연일 추락하고 있고 거래대금은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27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02% 내린 2404.77로 장을 마쳤다. 장중에는 2400선을 밑도는 등 시가총액 주요 종목이 일제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연일 순매도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이 저가매수에 나섰지만 지수 방어에는 한계가 있었다. 코스피 거래대금은 6조 1941억 원으로 올해 들어 최저치를 경신했다.
특히 전월 코스피 종가가 2455.91인 점을 감안하면 30일 코스피가 2.13% 이상 상승하지 못한다면 지난 7월 이후 6개월 연속 지수 하락세를 기록하게 된다. 2000년 이후 코스피가 5개월 이상 연속 하락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5차례에 불과하다. 또 6개월 연속은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2차례뿐이다.
원인은 역시 원달러 환율에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 속도 둔화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나증권 전규연 연구원은 “환율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내년 1500원대 환율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도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거나 돌파할 경우 한국경제는 이를 버텨낼 힘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들고 있는 가운데 고환율이 유지될 경우 가계와 기업이 모두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고환율은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며 “내수와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한계기업과 부실 차주들을 중심으로 파산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