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야기하는 데 캐릭터가 중요하진 않아요.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하는 거죠.”
배우 황정민의 생각은 확고했다. 예전부터 그는 늘 캐릭터보다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말의 진의를 느낄 수 없었다. ‘국제시장’ ‘베테랑’ 등 최근 그의 출연작은 물론 그동안 그가 해 왔던 영화들을 보면 이야기도, 캐릭터도 매력적이었으니까.
이야기를 중시하는 그의 생각은 ‘검사외전’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이 작품은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된 검사 재욱(황정민)이 감옥에서 만난 전과 9범 꽃미남 사기꾼 치원(강동원)과 손잡고 누명을 벗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
황정민과 강동원의 버디무비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화의 절대적인 재미는 강동원에 있다. 황정민이 연기한 재욱은 지극히 평범하고 식상한 인물이다. 새로움도 없을뿐더러 특별한 매력도 보이지 않는다.
이에 황정민은 “당시 대본 중 한 번에 읽혔던 대본이었다. 키득키득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곤 “내 캐릭터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가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밋밋한 캐릭터가 아쉽진 않았을까. 그는 다시 한 번 “그랬으면 애초에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코믹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궁금했던 건 치원을 연기할 배우. 그리곤 강동원이 한다고 했을 때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는 “동원이가 이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궁금하지 않나”라며 “이전 작품들과 사석에서 본 동원이를 생각했을 때 ‘재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100%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약간 어설프지 않나. 근데 귀엽다”며 “저렇게 사기 쳐도 되겠다 싶더라”고 웃음을 보였다.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강동원의 매력은 터졌고, ‘검사외전’은 연일 흥행 기록이다. 그렇다고 그의 역할이 없는 건 아니다. 강동원이 영화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든든한 판을 깔아야 했다. 황정민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해낸 셈이다.
그는 “캐릭터 적으로 판을 잘 깔아야 치원이 뭘 해도 먹힌다”며 “다만 치원 옆에 재욱이 늘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황정민은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 그리고 ‘검사외전’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여기에 뮤지컬 ‘오케피’ 연출과 주연까지. 잠시 쉴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최근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를 마쳤고, 조만간 류승완 감독과 다시 한 번 손 잡고 ‘군함도’ 촬영에 들어간다.
그는 ‘아수라’에 대해 “오랜만에 끈적끈적한 영화를 찍었던 것 같다”며 “피 칠갑이지만 감정적으론 되겐 끈적끈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성이가 정말 잘했다”며 “새로운 얼굴의 정우성이 있으니까 같은 배우로서 기분이 좋더라”고 궁금증을 키웠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400여 명 조선인의 이야기다. 쉬운 소재는 아니다.
이에 황정민은 “원래 ‘베테랑’ 전에 하려고 했는데 너무 큰 그릇이더라”며 “진짜 잘 만들어야지 섣불리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베테랑’을 먼저 하고, 다시 한 번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하는 자세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사잖아요. 숨길 수 없는. 창피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인 거죠. ‘대한민국 만세’ 말고,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왔던 삶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죠. 올해 저한테는 제일 큰일이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사진=비에스투데이 강민지 기자
비에스투데이 황성운 기자 bstoda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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