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쌍둥이 적자'라고 부른다.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으로 친숙한 로널드 레이건의 재임 8년 동안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각각 2조5천억 달러와 5천6백억 달러로 늘어났다.레이거노믹스에 의한 감세정책과 국방비 지출로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국제경쟁력이 저하해 무역적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레이건은 미국을 세계 최대 채무국가로 전락시켰지만 냉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냉전의 전사'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비난했으며,소련에 대한 `취약성의 창'(window of vulnerability)을 닫기 위해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국방비를 크게 늘렸다.
생산 중단 상태에 있던 B1 전략폭격기 개량형의 생산을 재개했으며,1983년 3월에는 레이저 광선이나 미사일을 이용해 소련의 핵미사일 공격을 우주공간에서 요격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0년 레이건이 주연을 맡았던 '공중에서의 살인'(Murder in the Air)이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자파를 교란해 적기를 격추시키는 비밀무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도 있었다.당초 기술면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SDI의 핵심개념은 오늘날 미사일방어시스템으로 현실화되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고 있다.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거나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데 이어 선제 북한 공격론까지 등장하고 있다.국방부는 핵무기 사용 징후가 보이면 모든 첨단무기를 총동원해 김정은을 비롯한 평양의 지도부를 초토화시키는 대량응징보복 작전계획을 국회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시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협력(사실상의 승인) 없이 우리 군이 단독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북한의 대규모 보복을 초래하여 평양이 지도상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 서울과 수도권은 북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공격의 타깃이 되어 불바다가 될지 모른다.
1979년 5월 미 의회 기술평가국(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은 '핵전쟁의 영향'(The Effects of Nuclear War)이란 보고서를 통해 미소 양국이 상대국 도시나 산업시설에 대해 핵공격을 가했을 때를 비롯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표했다.
디트로이트 시내 중심부에서 소련의 1메가톤(TNT 백만 톤)급 핵무기 1발이 지표면에서 폭발했을 때 폭심지에는 직경 300m 깊이 61m 크레이터가 생기고 반경 1㎞ 이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반경 2.㎞ 이내의 건물은 뼈대만 남고 내부는 완전히 파괴되어 대낮에 폭발할 경우 유동인구(20만 명)의 65%인 13만 명이 사망하고 22.%인 4만5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핵폭풍에 의해 반경 2.7-4.4㎞ 지역 내의 고층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의 내벽은 날라 가고 개인주택은 완전히 파괴되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고 10% 미만이 간신히 부상을 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반경 2.7㎞ 이내에서 방사선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핵폭풍 때문에 반경 3.2㎞ 이내에서 생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폭심지로부터 4.4-7.6㎞ 이내의 대형 빌딩의 유리와 창틀은 모두 파괴될 것이며, 인구의 절반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사망자는 5% 정도에 머물 것이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는 적어도 24시간 동안 계속되어 건물의 절반을 파괴할 화재에 의한 것이며, 복사열로 최대 9만5천 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폭심지로부터 7.6㎞를 벗어나야 부상자는 25%까지 줄어들고 사망자도 없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추정했지만, 시뮬레이션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남과 북, 어느 쪽의 오판에 의해서이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재발한다면 그것은 대재앙이 될 것이다. 남과 북은 상대방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방과 공격을 멈추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말아야 하며, 북한은 추가 핵실험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1962년 10월 소련이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공격용 미사일을 미국의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 반입하면서 시작된 13일 간의 쿠바위기는 핵시대 도래 이후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갔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많은 참모들이 쿠바에 대한 공습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봉쇄를 선택했던 것은 미군의 공습으로 무고한 쿠바 인민들은 물론 작전에 참가하는 많은 미군들이 사망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케네디는 강대국 미국이 약소국 쿠바를 공격하는 것은 비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이나 이념에도 반하며 결코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믿고 있었다.
나아가 미국이 쿠바에 대해 핵공격을 할 경우 소련은 서독이나 다른 미국의 동맹국에 대해 보복공격을 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쿠바위기 시 소련이 미국에 굴복하여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거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이 터키에 있던 미사일 기지의 철거를 소련에 약속했던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억지력을 높여야 하지만 가용한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결단은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으며, 주변국가와의 마찰을 일으킬 수 있어 북핵문제 해결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현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바로 시작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개발을 시작한 뒤에는 중국과 인도에 대한 자국의 안보 우려를 미소 양국과 국제사회가 무시했던 것도 작용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재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대북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 재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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