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5월 23일자 '한일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이란 제하의 칼럼을 통해 작년 12월 28일의 전격적인 위안부 합의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서 어렵게 이룬 합의가 성공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합의 성공 가능성보다 양국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첫째, '12·28 합의'는 기존 일본 정부 입장의 변화를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총리가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한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해왔던 아베 총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사죄를 표명했다고 높이 평가했지만, 외상의 입을 통한 대리 사죄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보다 앞선 1992년 1월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학 교수가 방위청(당시)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의 관여를 보여주는 자료를 발견했다. 가토 고이치 관방장관은 위안부의 모집이나 위안소의 경영 등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며칠 뒤 한국을 방문한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는 우리 국회 연설에서 한일관계의 역사에서 한때 일본이 가해자, 한국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실로 마음이 아프며 정말로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죄했으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를 올바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자신들 세대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 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위안부 관련 내부조사를 실시했다. 1992년 7월 6일과 1993년 8월 4일 두 차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다시 한번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후자가 잘 알려진 이른바 '고노 담화'다.
여기서 일본 정부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반도 출신 위안부가 가장 많았으며 위안소 설치와 관리, 위안부 이송 등에 일본군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위안소 생활이 본인의 의사에 반한 참혹한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했지만,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표명했던 것과 비교해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전향적인 것이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둘째,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양국 정부가 협력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과 상처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실시한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양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6월말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했으며, 일본 정부는 9월 1일 약속대로 10억 엔을 송금했다. 합의일인 12월 28일을 기준으로 생존 피해자에게는 1억 원, 사망 피해자에게는 2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 이외에 양국이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기로 했는지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화해·치유재단의 정관 제4조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여성가족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지만 여성가족부장관은 외교부장관과 협의를 하여 승인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재단은 양국 정부가 합의한 사업을 시행하는 기관이지 사업 자체를 결정하는 곳이 아니며 그럴 권한도 없다. 재단에는 이사장을 비롯한 비상근 임원과 사무처장을 비롯한 상근직원을 둘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들의 보수나 사무실 운영 경비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일본 정부가 거출한 10억 엔(100억여 원)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고 남는 자금으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이 자금이 소진되면 재단을 청산하고 이때를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시점으로 볼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한일 양국 정부는 합의가 착실히 이행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셋째, '12·28 합의'로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 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는 1965년의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보는 반면 우리 정부는 이를 부인해왔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 여부와 이와 관련한 양국 간의 해석상의 분쟁을 협정 제3조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인지 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이 제기된 바 있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분쟁 발생 시 외교경로에 따라 해결한다는 청구권협정에 따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의 명백한 잘못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따른 양자협의의 개시를 일본 측에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응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위안부 문제를 협의하는 외교당국 간 국장급 회담이 처음 열렸으며 '12·28 합의'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양국 정부는 이 회담이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해석상의 분쟁 해결을 위한 회담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21일 위안부 합의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효력을 소멸시킨 것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회답한 바 있다. '12·28 합의'에도 불구하고 청구권을 둘러싼 한일 양국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고, 특별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 개개인의 청구권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앞으로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견해다.
외교부도 '12·28 합의'로 타결된 것은 `한일 양자 간 외교 현안으로서의 위안부 문제'일뿐이며(외교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FAQ),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기존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2016년 9월 1일,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 앞으로 이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일본 측과의 인식 차이는 크다.
넷째, 정부 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반대하는 의견이 국내에 강하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이 강한 것은 정부·여당도 야당도 아니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일지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12·28 합의' 당일 정대협을 비롯한 관련단체들은 위안부 합의를 피해자의 바람을 외면한 외교적 담합이라면서 2014년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제언에 따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연대회의 제언의 골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위안부' 제도가 당시의 국내법과 국제법에 위반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였으며, 일본 정부와 군이 군 시설로 위안부를 설치 관리 통제하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되고 강제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에 입각하여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사죄하고, 사죄의 증거로 피해자에게 배상하며 자료조사와 공개를 통한 진상규명, 학교교육·사회교육·추모사업·부적절한 공인의 발언 금지 등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군이 `국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핵심쟁점이지만, 이들 뒷받침할 수 있는 포괄적인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책임'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일본 정부에 의해 취해져왔거나 일본 정부가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근 야당 의원 102명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 법률의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부가 해오고 있는 것에 약간 추가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정대협이 중심이 되어 만든 정의기억재단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조항도 보이며, 화해·치유재단의 사업과 중복되는 부분도 많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생활안정지원금(일시금 4천3백만 원, 매달 126만 원), 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급여, 의료보험, 간병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정부 산하에는 위안부 관련 조사와 연구를 할 수 있는 기관도 많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제기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정부에 등록된 238명의 피해자 가운데 40명이 생존해 있을 뿐이며 그 중 스무 분이 90세가 넘었다. 정부든 민간이든 자신들의 입장만을 금과옥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일본에 요구해야 할 것은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할 일까지 미루지는 말자. 새로울 것도 없는 아베 총리의 사죄 편지보다 대통령의 따듯한 손과 말 한 마디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것이 지도자의 정치력이고 리더십이다.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도쿄대학 법학박사, 국제정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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