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이 생각나는, 김밥 따로 반찬 따로 충무김밥 [박상대의 푸드스토리]

입력 : 2018-01-22 11: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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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은 경상남도 충무(현 통영시)에서 유래한 향토음식이다. 특정 지역 이름을 따서 부르는 이름은 충무김밥이 처음이다. 나중에 종로김밥이 나왔다.

내가 충무 김밥을 처음 먹은 것은 20대 중반 막 연애에 눈뜨던 시절, 광주에서 여자친구랑 여수에 갔다가 여수항에서 충무까지 엔젤호라는 쾌속선을 타고 갔을 때다. 그 시절 한려수도를 가르며 날아가듯 달린 쾌속선을 타고 충무까지 간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 아가씨가 낯선 바닷길을 동행해준 사실이 기적이었고, 가난한 학생이 상당히 비쌌을 배삯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한 끝에 충무에서 광주까지 돌아올 버스값을 남기고 약간의 돈으로 충무김밥을 사서 점심을 때운 것이다.

손가락만큼 가늘게 말아서 반 토막을 낸 김밥을 한입에 넣으면서 적이 실망했다. 이건 전라도 청년이 그동안 먹었던 김밥이 아니었다. 모양이 작은 데다 밥만 넣어서 말았기 때문에(깨소금이 조금 뿌려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혀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차마 버릴 수 없어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먼 훗날 다시 충무에 가서 그 시절 김밥집에서 실수로 반찬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충무김밥이 생겨난 것은 1930년대 중반, 바다에 나가던 뱃사람들이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나갔으나, 하루 종일 뱃일하다보면 밥 먹을 시기를 놓쳐서 굶기 일쑤였다. 특히 여름에는 김밥 속 나물이 쉽게 쉬어버려 먹을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어부들은 김에는 밥만 싸고, 반찬을 따로 가지고 다녔다. 또한 김밥도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게 작게 만들었다. 지금도 충무김밥에는 오징어무침과 깍두기, 시래기 국물이 따로 나온다.

충무김밥의 원조가 어느 음식점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통영 항구 안에는 수많은 충무김밥집들이 '원조' 간판을 걸고 있다. 여행작가들도 저마다 단골집이 따로 있다. '한일김밥'과 '통영할매'집이 여러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을 뿐 맛은 비슷하다. 김밥 맛으로는 특별한 맛이 없고 밍밍하다. 깍두기와 오징어무침, 국물이 조금 다르다.

김밥은 역시 식당보다 밖에서 먹어야 어울린다. 욕지도 가는 배안에서 충무김밥을 먹었다. 먼 옛날 그녀와 데이트할 때 생각이 바다 속 너울처럼 밀려왔다. 김밥 맛이 변하지 않았으니 그녀를 향한 그리움도 변함이 없다면 사람들이 공감할까? 작은 음식에 옛사랑과 추억의 스토리를 입혀 먹으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동행한 사람은 내 미소의 깊은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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