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가 만들어 낸 뭍과 물의 결합, 갈낙탕 [박상대의 푸드스토리]

입력 : 2018-01-11 15: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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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영암독천에서 갈낙탕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처음 발견했다. 영암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미암 갯벌을 품고 있던 독천은 낙지로 유명한 동네였다. 작은 면소제지에 불과한 곳인데 광주 목포 해남 진도 일대 사람들에겐 매우 낯익은 이름이었다. 독천이 유명세를 떨친 것은 낙지를 비롯한 해산물과 영암 일대 농가에서 쏟아져 나온 한우 시장 때문이었다. 연포탕, 낙지회무침, 산낙지 등 많은 낙지요리를 개발해서 팔고 있던 독천 사람들이 갈낙탕을 개발한 것이다.
 
갈낙탕은 세상에 나온 후 금세 결혼식 피로연장의 주된 메뉴가 될 정도로 인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갈비와 낙지는 따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다. 갈비탕만으로 근사한 메뉴이고, 낙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우 갈비와 거무튀튀한 뻘낙지의 만남은 늦가을부터 초여름까지 남도 사람들의 입맛을 훔치고 있다!
 
남도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음식을 개발하고 조리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홍어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로 구성한 홍어삼합이 대표적이다. 삼계탕에 전복을 넣어서 만든 전복삼계탕, 한우고기와 키조개와 표고버섯으로 구성한 장흥삼합이 있고, 갈낙탕도 그 중 하나이다.

1970년대 후반, 소 값이 폭락했을 때 이야기다. 한 음식점에서 소갈비로 갈비탕을 끓여 팔았는데, 손님들이 소 값이 싸다고 갈비탕도 싸구려 대우를 했다. 그때 한 주인이 펄펄 끓는 갈비탕에다 산 낙지 한 마리를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갈빗살 육질이 한결 부드럽고, 국물맛이 시원하고 담백하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음식점 주인은 새로 개발한 메뉴를 ‘갈낙탕’이라 이름 붙여서 팔기 시작했다. 그 후, 갈낙탕은 영양가가 높은 보양식이라는 이미지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입맛을 사로잡았다.

갈낙탕은 미리 끓여둔 육수에 익힌 갈비를 넣고 조금 더 끓인 뒤 낙지를 넣는다. 그리고 대파를 큼직하게 숭덩숭덩 썰어 넣는다. 갈비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진 마늘과 당면을 넣고, 대추·밤·수삼 등을 몇 조각 넣기도 한다. 산낙지를 한 마리 통째로 넣어주는 집도 있고, 살짝 데친 막지를 잘라서 넣어준 집도 있다. 나는 낙지다리를 먼저 건져 먹고, 갈비를 나중에 먹는다. 낙지를 오래 두면 질겨지니까. 그리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나면 괜히 기운이 불끈 솟는 기분이 든다.

갈낙탕을 먹을 때면 천천히 먹으려고 의식하는데도 자꾸만 속도가 빨라지고,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힌다. 혀를 끌어당기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 때문인 줄 안다. 가볍게 씹히는 갈빗살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육즙, 미끈거리면서도 탱탱한 낙지다리를 씹을 때 느낌이 먹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갈낙탕은 체내의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영암에서 시작한 갈낙탕은 무안, 목포, 해남, 완도 등 남해안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글 박상대 월간 '여행스케치' 대표 psd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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