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새 부산 공공도서관은 양적으로 급속하게 늘었지만, 여전히 시민들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효능감은 낮다. 늘어난 도서관 수와 역할에 비해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고 정책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산 공공도서관의 질적 성장을 위해 ‘도서관에 대한 인식 전환’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체계적인 정책 수립 선행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도서관 건립과 지원 강화 등과 함께, 부산시 차원에서 공공도서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장기적인 정책과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군별 도서관 운영이 일원화되지 않은 탓에 도서관에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 배정, 운영 방침 등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서비스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 지역 공립 공공도서관은 55개다. 이 가운데 구·군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은 41곳인데 지자체의 재정 상황, 지자체장의 의지나 철학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
지역 여건에 따라 도서관 운영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어느 곳에 사는 시민이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도서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부산시 차원에서 전반적인 도서관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20년 문을 연 부산도서관이 대표도서관으로서 부산 지역 공공도서관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정책적 차원에서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결국 여전히 시민들은 지역별로 도서관 서비스 차이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신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차성종 교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광역도서관위원회를 정례화하고 내실 있게 운영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도서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부산시 차원에서 도서관 운영·행정 체계를 강화해 구·군별 도서관 서비스의 일관성을 높이고, 행정이 메우지 못하는 지점을 부산도서관이 보완하는 유기적인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장서·인력 확충, 의지에 달려
체계적으로 수립된 정책 위에 도서관 운영 주체의 강한 의지가 더해져야 자료와 인력 부족 등 부산 공공도서관의 단점이 보완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 내 도서관에 사서 수가 부족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조직 내 총 인력 수를 제한하는 총액인건비제 등을 이유로 사서직 충원을 미루고 있는데, 이는 해당 지자체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낮게 인식한다는 의미다. 이진우 한국도서관협회장은 “지자체장이 도서관 가치와 중요도를 높게 인식하면, 인력 배정 등 지원의 우선순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일부 도서관에서 나타난 지나치게 낮은 자료 구입비 비율도 이같은 접근으로 완화할 수 있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는 “부산시가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일정 비율 이상의 예산을 자료 구입비로 지출한 도서관에 예산 지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며 “시에서 적극적으로 개별 도서관의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비싼 땅에 도서관을
낮은 접근성 문제도 도서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주체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이들이 전통적인 자료 제공과 열람실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나, 커뮤니티와 창조 공간이라는 도서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할 때 자연스럽게 도서관이 ‘있으면 좋은 여가 시설’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될 필수 시설’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 인구 밀도와 도서관 서비스 권역 분석 등 과학적인 검토를 통해 적재적소에 도서관을 공급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높은 초기 비용을 감수해야 도서관 건립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며 “투자 대비 효과를 높이려면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많은 시민이 접근하기 쉬운 입지에 도서관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말 개관을 앞둔 경기 수원시 경기도서관은 이러한 원칙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경기도가 약 1200억 원을 들여 광교융합타운 내에 건립하는 경기도의 대표도서관으로 도보 1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도청, 도의회 등 주요 행정 시설과 함께 들어서 활용도도 높다. 입지 조건상 땅값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지만 도시 계획 단계에서부터 도서관 부지로 낙점됐다. 도서관과 행정 시설, 그리고 이곳을 찾을 수많은 시민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지역 중심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도시 계획 차원에서 도서관 입지를 결정해야 하고 시민들의 활용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과감한 입지 선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심 내 부지 자체가 부족한 부산은 공영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도서관을 짓거나 싱가포르처럼 백화점 등 상업 시설에 도서관을 함께 설립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진우 한국도서관협회장은 “도시에서 도서관의 가치가 얼마나 높게 평가되느냐에 따라 도서관의 정책적 우선 순위가 달라진다”며 “정책 결정권자와 운영 주체가 시민들을 만나 달라진 도서관의 역할 등을 접하면서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