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2026-01-07 18:09:45
지난해 최대 수익을 낸 은행권이 ‘역설적이게도’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특히 대상 연령이 만 40세(1985년생)까지 확 낮아지면서 “잘 나가는 은행이 왜? 뭐가 급해서”라는 의문이 따랐고,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정년 연장’ 논의까지 거세지고 있는 마당에 ‘40세 은퇴’라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과거 ‘사오정’(45세 정년)이 유행하던 시절, 명예퇴직의 목적은 ‘비용 절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력 재편’이 목적이 됐다. 이 때문에 1인당 5억 원씩 얹어 주고라도 사람을 내보내려 한다. 은행의 경우 대면 업무를 하던 영업 인력을 줄이고 대신 디지털 업무를 고도화할 IT 전문가들로 인력 포트폴리오를 새로 짤 계획을 세우고 있다. AI(인공지능) 뱅커나 AI 화상 창구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늘며 영업점 수는 점점 줄고 있고, 그만큼 사람이 하던 업무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노련한 은행원은 고객의 목소리 톤만 듣고도 대출 연장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AI가 고객의 소비 패턴과 SNS 활동까지 분석해 0.1초 만에 등급을 매길 정도니 사람 사이 ‘신뢰’라는 감정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
조직 내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치를 가진 ‘중고참’ 15년차, 40세마저도 ‘나가도 그만’이 될 정도면 앞으로 ‘IT 인력’을 제외하고는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희망퇴직 뉴스는 또 다른 인력 시장의 ‘구성품’에 불과한 직장인들에게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책처럼, 은행에 ‘먼저 온 미래’다.
장 작가는 저서 〈먼저 온 미래〉에서 이세돌 9단이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후 프로 기사들의 달라진 ‘세계’를 인터뷰하며,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세계를 끊임없이 비춘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그러하듯, 독자도 자신의 직업에 이를 빗대보게 된다.
장 작가는 말한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 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고 있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실제로 10년, 20년 쌓아온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를 AI가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걸 보면,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40세까지 내려온 희망퇴직 연령 탓에 은행권이 시끌벅적한 신호탄이 됐지만, 실은 곳곳에서 이 같은 인력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공정 품질 분석에 AI를 도입하면서 분석 시간을 3주에서 2일로 단축했고, 이에 따라 단순 분석 인력은 줄이고 AI 모델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 중심으로 인력을 재편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에서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의 약 7%가 퇴사했는데, AI 등 신사업을 위한 신입사원 채용이 희망퇴직의 주요 배경으로 알려졌다.
마침 6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의 핵심 키워드는 ‘피지컬 AI’라고 한다. 그나마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추던 게 AI였는데, 이제는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벗어나 몸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AI가 로보틱스와 결합해, 단순 자동화를 넘어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해 조작하게 되면, AI가 사람을 대신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번에 은행권이 보여준 거대한 예고편을 보며, 우리는 본편을 준비해야 한다. ‘AI 시대, 인간이 AI에 대체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지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AI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AI 시대에 인간이 대체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래의 인재는 AI에게 명령을 내리는(Prompter) 사람이거나, AI의 결과물을 책임지는(Decision Maker)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 3가지 핵심 준비 사항을 일러준다. △정답을 찾는 능력에서 질문하는 능력으로 바꿀 것 △인간의 고유 영역인 공감과 협상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감성 지능(EQ)과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출 것 △새로운 AI 툴이 나왔을 때 빠르게 습득해서 적용하는 적응력을 키울 것. AI가 말한다면 정답이겠지.
AI가 다 해주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더 편해질 줄 알았더니, 왜 할 일은 더 많아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