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6-06-21 17:18:00
‘태인정도가’ 최은경 대표.
“술은 어렵지만 배울수록 원하는 술을 빚을 수 있어서 공부를 더 하게 돼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필드하키 은메달리스트였던 ‘태인정도가’ 최은경 대표의 이야기다. 국가대표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우리 술을 빚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 금정구 부곡동으로 찾아갔다. 술도가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간판 하나 내걸지 않았으니 굳이 알리기보다, 아는 사람만 오라는 뜻이었다.
최 대표는 “저는 타고난 운동선수는 아니었다. 어쩌다가 운동하게 됐는데 국가대표로 뽑히고 나서도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다. 술 만들 때도 그런 근성이 발휘되더라”라고 말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필드하키 결승전에서 아쉽게 호주에 패배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멋모르고 시작한 운동은 실업팀과 국가대표로 28세까지 이어졌다. ‘독종’과 ‘악바리’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녔다.
태인정도가 최은경 대표와 애주가 남편 정종권 씨.
술에 대한 관심은 남편 정종권 씨 덕분에 생겼다. 애주가인 정 씨는 술에 취해도, 다음 날 또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주일 내내 마셔도 괜찮은 술을 찾았지만, 세상에 그런 술은 없었다. 어느 날 방송에서 술 거르는 모습을 보고는 아내에게 그런 술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다.
최 대표가 술을 만든 지는 벌써 10년이 되어 간다. 독학으로 5~6년 집에서 빚다가, 좋은 술을 사람들과 나눠 먹을 생각으로 4년 전에 술도가를 냈다. 그는 “태인정은 아이들 이름인 ‘태웅’, ‘인웅’, ‘현정’에서 한 글자씩 땄다. 마케팅하는 사람들은 술도가 이름을 그렇게 짓는 게 아니라고 반대했지만, 절대 부끄럽지 않은 술을 만들겠다는 순수한 각오를 담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술은 쉽지 않았다. 그는 “술의 이치를 모르고 술을 빚으면 자기 술 외에는 만들 수가 없고, 술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바로잡을 수가 없다. 유명한 양조장도 자기네 술만 만들 줄 알았지, 다른 술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설명을 못 하는 게 답답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술에 관한 지식에 목말라하다, 전북 고창의 ‘우리술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술 공부를 하게 됐다.
최 대표는 “처음부터 새로 배웠다. 쌀 씻기도 고두밥 찌는 것도 달랐다. 그렇게 배운 대로 술을 빚었더니 품질이 좋아졌다. 지금은 술이 어떻게 해서 나오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왕복 7시간을 운전해서 4년 동안 고창으로 술을 배우러 다녔다. 지금은 다시 메주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니 운동할 때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나온 술이 2025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약주 ‘남다어다’이다. 물과 쌀, 누룩만으로 자연발효해서 나온 22도 고도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도수가 높지만 단맛은 덜해서 양식과도 잘 어울린다. 그 덕분에 해운대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도 들어가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라는 뜻을 담았다.
국가대표 출신이 담근 술들은 모두 옹기 안에서 익어가고 있었다. 옹기에 빚은 술은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글 때보다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낸다고 했다. 최 대표는 “혼자서 술을 빚다가 궁금해 물어보러 오는 분들에게는 허심탄회하게 모든 이야기를 해 준다. 우리나라 술은 열 명이 똑같이 빚어도 똑같은 술이 하나도 안 나오기에 공개해도 상관이 없다. 저보다 술 잘 빚는 분이 나오면 부럽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전통주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전통은 계승 발전시키는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