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제 19대 대통령 당선인이 9년 만에 청와대 문턱을 밟는다. 이에 문 당선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국민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본래 문 당선인은 '정치는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인권변호사 활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연결된 끈이 그를 정치인의 운명으로 이끌었다. 학생 문재인, 변호사 문재인, 정치인 문재인의 삶을 짚어봤다.
■ 가난한 피난민의 아들, 불의에 저항하는 청년
문 당선인은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한국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피난민이었다. 때문에 가난은 피할 수 없었다. 문 당선인은 지금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데, 가난한 형편에 자전거 살 돈도 배울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업에 매진해 부산 최고 명문으로 꼽히던 경남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극심한 사춘기로 ‘문제아‘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공부를 놓지 않았다. 원래 역사학자가 꿈이었던 문 당선인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뜻대로 서울대 상대에 응시했다 낙방한다. 재수 끝에 그는 가정 형평상 1972년 경희대학교 법학과 4년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72년은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선포와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이 점차 노골화 되던 때였다. 문 당선인은 가난했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젊음이었다. 그는 1975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내 시위를 벌이다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같은 해 문 당선인은 석방되자마자 강제징집 됐다. 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된 그는 특전사로 훈련받으면서 폭파과정 최우수, 화생방 최우수 표장을 받는 등 특 A급 사병이 됐다.
■ 노무현과 함께 한 인권변호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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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제공 |
1978년 2월 만기 제대한 문 당선인은 아버지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가장의 무게를 느껴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공부와 민주화 운동을 병행하던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시위경력이 문제가 돼 판사 임용에 탈락한다.
문 당선인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내려간 부산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 동업자이자 삶의 동반자가 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두 변호사는 인권, 시국, 노동 사건 등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고 선, 후배 또는 친구처럼 신뢰를 쌓아나갔다.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시작되자 문 당선인도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는 이를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기도 했다. 결국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휴식을 취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변호사로 복귀했다. 이후 탄핵 재판이 끝나자 다시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돌아와 2005년 1월 다시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참여정부 임기를 마친 이후 양산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당선인의 삶을 다시 흔들어 놨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그의 자책이 다시 정치에 발을 내딛게 만든 것이다.
■ 정치인으로서 '제 2의 인생' 시작
이후 문 당선인은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하고, 2012년 4월 부산 사상구에서 총선에 출마해 승리했다. 그리고 제18대 대선에 도전했다. 그는 야권 대선 후보 최고의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대선 이후 문 당선인은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재연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 공개하며 국론을 분열 시켰다. 결국 그는 2013년 10월 "검찰은 짜 맞추기 수사로 죄 없는 실무자들을 괴롭히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직접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이듬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문 당선인을 다시 각성하게 만들었다.그는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아빠' 김영오 씨와 동조단식을 했다. 당시 야당의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을 받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 당선인은 2014년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혁신위원회로 공천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고, 온라인 당원 활성화를 통해 10만 온라인당원을 입당시키는 등 혁신에 적극 나섰다. 이후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인재 영입에 나서 지난해 4·13 총선승리를 이끌며 제1당으로 만들었다.
■ '재수생' 문재인, 9년 만에 청와대로
국민의 촛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 시키자 그는 다시 대권에 도전했다. ‘재수생’ 입장의 문 당선인은 지난달 3일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누적 과반의 득표를 얻으며 결선 투표 없이 본선으로 직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 당선인 중심으로 뭉쳐 선거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9일 치러진 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2위 홍 후보와의 격차를 점점 벌려나가며 당선을 확실시 했다.
그는 이날 오후 광화문에서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저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까지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또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뒤 "위대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김상혁 기자 sunny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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