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주말] 재미와 감동 모두 잡았다…‘플래시’와 ‘엘리멘탈’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3-06-16 15:39:00

영화 ‘플래시’와 ‘엘리멘탈’.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플래시’와 ‘엘리멘탈’.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DC’와 ‘픽사’의 야심작이 같은 날 공개됐습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플래시’와 ‘엘리멘탈’ 모두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고,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최근 개봉한 외화 중에서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두 작품을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아이맥스로 본 ‘플래시’…DC가 달라졌다

커피 주문도,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못하는 소심한 남자 배리(에즈라 밀러). 직장 동료들에게도 놀림 받고 무시당하지만, 사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슈퍼히어로 입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플래시’는 DC 세계관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히어로 ‘플래시’를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입니다. 플래시는 무너지는 건물에서 인명을 척척 구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는 구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는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스티스 리그’의 일원으로 활약하던 배리는 자신이 빛보다 빨리 달리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리더인 배트맨(벤 에플렉)은 과거로 돌아가면 큰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배리는 어머니를 잃었던 날로 돌아갑니다.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배리는 묘책으로 어머니를 살리는 데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면서 상황이 꼬입니다. 그가 돌아온 곳은 단순한 과거의 지구가 아니라, 멀티버스 속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배리는 원래 살던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크립톤 행성의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이 다시 나타나면서 이쪽 지구가 파멸의 위기에 빠집니다. 결국 배리는 나이 들어 은퇴한 이쪽 지구의 배트맨(마이클 키턴), 그리고 ‘슈퍼걸’(사샤 카예)과 함께 조드 장군에 맞서 싸웁니다.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이 연출한 ‘플래시’는 DC확장 유니버스의 마지막 편이자, DC의 새로운 세계관인 DC유니버스를 예고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DC 영화들이 부진과 혹평에 시달리면서 ‘플래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DC가 내놓은 영화는 로버트 패틴슨 주연의 ‘더 배트맨’(2022)을 제외하면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원더우먼 1984’(2020),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 ‘블랙 아담’(2022), ‘샤잠! 신들의 분노’(2023) 등이 화려한 캐스팅과 시각효과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저스티스 리그’(2017),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 등 플래시 캐릭터가 등장했던 영화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플래시’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개봉 전부터 ‘역대급’ DC 영화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기대를 안고 감상한 ‘플래시’는 꽤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초반입니다. 감각적인 연출과 화려한 CG(컴퓨터 그래픽),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눈을 즐겁게 합니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플래시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슬로우 효과들의 활용이 적절합니다. 기자는 아이맥스 포맷으로 감상했는데, 스크린X 등 다른 특별관에서도 감상해보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영상미를 보여줍니다.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DC 영화의 약점으로 지적된 스토리도 한층 탄탄해졌습니다. 플래시가 과거로 이동했다가 좌충우돌하면서 갈등을 겪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나쁘지 않습니다.

캐스팅은 ‘플래시’의 강점입니다. 우선 에즈라 밀러의 1인 2역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원조’ 배리와 성격이 너무 다른 18살 배리가 보여주는 ‘케미’가 흡입력이 있습니다. 부모를 되찾으려는 원조 배리의 고뇌는 몰입을 돕는 반면, 초능력이 생기자 주체를 못하고 뛰어다니다 사고를 치는 18살 배리의 천진난만함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합니다. 객석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과거 DC 영화 주인공의 등장은 올드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배트맨 2’(1992)의 주인공인 마이클 키턴이 은퇴한 배트맨으로 등장합니다. 배트맨과 팀을 이루는 ‘슈퍼걸’은 신예 배우 사샤 카예가 맡았는데, 독특한 퇴폐미를 뿜어내 매력적입니다.

영화는 가족애라는 메시지도 충실히 전달합니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특정 대사들은 큰 감동을 안깁니다.

그러나 ‘역대급’이라는 평가에 큰 기대를 품고 극장에 찾았다가 실망했다는 관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DC 스튜디오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임스 건 감독은 “내가 본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 중 하나”라고 극찬했지만, 실제로 그 정도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플래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국내 실관람객 사이에서는 극 초반의 액션씬 등은 충분히 볼 만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액션의 빈도나 강도가 아쉽다는 평가가 일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CG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는 많은 관객이 동의했습니다. 전개가 느슨해지는 극 중반은 다소 지루하다는 비판에도 공감이 갑니다.

주연 배우인 에즈라 밀러를 둘러싼 논란도 아쉽습니다. 밀러는 ‘악동’과는 거리가 먼 헐리웃 스타였는데, 지난해에 절도와 폭행, 그루밍 성범죄 등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시에티 감독은 “에즈라 밀러만큼 플래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배우 교체 없이 영화 제작을 강행했습니다.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멀티버스도 호불호 요소입니다. 영화 ‘플래시’는 배리의 성장을 위해 멀티버스를 자연스럽게 활용했지만, 시공간의 왜곡과 충돌이라는 소재 자체가 식상하게 느껴질 관객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멀티버스를 남용한 건 마블이기에 DC 입장에선 억울한 비판이겠습니다. DC 세계관을 재설정한 ‘플래시’의 쿠키 영상은 1개입니다.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한국계 이민자 주인공인 픽사 영화 ‘엘리멘탈’

‘엘리멘트 시티’에는 불, 물, 공기, 흙 등 4개 원소가 살고 있습니다. 불의 민족인 ‘앰버’는 물인 ‘웨이드’와 도저히 섞일 수 없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는 사랑 앞에서 허물어집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엘리멘탈’은 한국계 미국인 피터 손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불의 자치구에 살고 있는 앰버입니다. 쾌활하고 열정적이지만 말 그대로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앰버는 이민자 2세입니다. 전통적 가부장제 가정에서 자란 앰버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아빠 ‘아슈파’는 앰버가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가게를 물려주겠노라 약속하고, 앰버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슈파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인 이민자 가정을 상징합니다. ‘아슈파’라는 이름부터 한국어 ‘아빠’에서 따왔고, 가게 외형은 아궁이를 닮았습니다. 아슈파는 엘리멘트 시티로 이민 오기 전에 가족들을 향해 큰절을 했는데, 실제로 밀양 출신인 피터 손 감독의 아버지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가족들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엘리멘탈’은 앰버의 성장을 통해 사랑과 평등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합니다. 영화엔 직간접적인 메타포들이 많습니다. 불의 민족은 여러 원소가 섞여 살아가는 도심에선 평범하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나무를 태울 수 있다는 이유로 식물원 출입을 금지당하는 등 차별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물의 종족은 물론이고, 물의 편의에 맞게 지어진 각종 기반 시설들은 불의 민족에게 불편을 유발합니다. 존재 자체로 밝게 빛나는 앰버는 어두운 영화관에선 주변 관객의 시야를 방해하는 민폐 빌런이 됩니다.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쓰고 잔뜩 위축된 앰버의 모습은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재치와 열정을 누른 채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앰버는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와 만나며 변화를 겪습니다.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둘은 점점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며 가까워집니다. 웨이드는 환히 빛나는 앰버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앰버는 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앰버의 마음에 자리 잡은 장벽이 둘을 가로막습니다. 차별에 대한 기억으로 물을 증오하는 아슈파가 딸의 교제 사실을 알게 되면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착한 딸이 되고 싶은 앰버는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아빠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불과 물은 결코 함께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불과 가까이 있을 때 물은 증발해버리고, 불은 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절대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두 원소가 끝내 화합하는 과정은 자연스레 감동을 유발합니다. 차별과 혐오를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편안하게 풀어내다니, 기발합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지만,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입니다.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엘리멘탈’.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엘리멘탈’은 픽사 영화답게 눈을 즐겁게 하는 영상미를 뽐냅니다. 의인화된 원소들은 귀엽고 매력적입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메시지와 어우러지니 몽글몽글한 감정이 샘솟습니다.

‘굿 다이노’(2016)로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이 작품으로 칸에 초청됐습니다. ‘엘리멘탈’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겁니다.

당시 무대에 오른 피터 손 감독은 “(‘엘리멘탈’은) 저희 부모님을 모티프로 한 영화다. 197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새 삶을 시작하셨다”면서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다 다르지만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러브스토리”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원소를 캐릭터로 만들어낸 데는 3D 애니메이터인 이채연의 역할도 컸습니다. 그 역시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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