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주류학술동호회와 지역 전통주 양조장이 만나면?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11-07 07:00:00

막걸리 수요 자체가 줄면서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막걸리 유행이 사그라들며 MZ세대를 중심으로 음주 취향이 하이볼이나 위스키 같은 주류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부산의 한 신설 양조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뜻밖에도 지역 대학의 주류학술동호회가 단체로 찾아오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주류학술동호회가 뭘까?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 양조장과 낯선 대학 동호회의 만남이 궁금해 찾아가 봤다.


‘가랑가랑 양조장’ 이주운 양조사는 한식 요리사 출신이다. ‘가랑가랑 양조장’ 이주운 양조사는 한식 요리사 출신이다.

■한식 요리사가 빚는 술 ‘가랑가랑 양조장’

부산 사상구에서 유일하게 전통주를 빚는 ‘가랑가랑 양조장’은 부산문화재단 주최로 F1963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다. ‘가랑가랑’은 액체가 많이 담기거나 괴어서 가장자리까지 찰 듯한 모양이라고 했다. 리드미컬한 어감이 막걸리와 잘 어울렸다. 지난해 12월 뒤늦게 양조장을 연 후발 주자였는데, 부부가 열심히 홍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내인 박선화 씨가 대표를 맡고, 남편 이주운 양조사가 막걸리를 빚는다. 이 양조사는 부산정보관광고 호텔조리과를 졸업한 뒤 여러 음식점에서 잔뼈가 굵은 한식 요리사였다. 그 뒤 대학 호텔조리과를 졸업하고 단체 급식 조리사로도 일했다. 20년이 넘는 경력의 요리사가 술독에 빠지게 된 이유는 기존 전통주 맛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아서였다. “우리 전통주 맛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안타까운 마음에 독학으로 술을 빚었더니 의외로 원하는 맛이 나와, 자신감을 가지고 양조장을 차리게 됐다는 것이다.


가랑가랑 양조장 박선화 대표와 이주운 양조사. 가랑가랑 양조장 박선화 대표와 이주운 양조사.

그의 양조 비결은 막걸리를 빚을 때 ‘맛있어져라!’는 주문을 외우듯 마음을 담아서 만드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양조사는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손맛은 마음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부산 막걸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재료는 100% 부산 쌀과 송학곡자 소율곡 누룩을 쓴다. 사상구에 양조장을 연 이유는 평생을 산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나온 막걸리들은 공통적으로 진하고 깊은 맛이 난다. 대표 상품인 ‘가랑가랑 막걸리(12도)’는 세 번 빚은 삼양주이자 무감미료 쌀막걸리다. 2025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우리술 탁주 생막걸리 일반 주류 부문 대상을 받았다. 적당한 산미, 적당한 단맛으로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술 좀 드시는 분에게는 ‘카랑카랑 막걸리(15도)’를 추천한다.

‘생자몽 막걸리(6도)’는 와인 효모가 들어가 스파클링와인 느낌이 난다. ‘베리베리머치(6도)’에는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크랜베리 등 베리 청이 네 가지나 들어갔다. 풍부한 과일 맛에다 청량감까지 더해 산뜻한 느낌이 난다.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들었지만 아직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랑가랑 막걸리, 가성비 갑의 전통주라고 하겠다.


가랑가랑 양조장 막걸리. 가랑가랑 양조장 막걸리.

■동아대 주류학술동호회 ‘아쿠아 비츠’

동아대에는 주류학술동호회 ‘아쿠아 비츠’가 있다. ‘아쿠아(Acqua)’는 물, ‘비츠(vita)’는 생명,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술을 아쿠아 비츠라고 불렀다. 요즘 대학에 주류학술동호회가 있다니, 신입생 환영식이라면서 사발주 먹이고 난리를 치던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대학에 그런 문화가 남아 있다지만, 새로운 문화 또한 생겨나고 있다.


동아대에는 주류학술동호회 ‘아쿠아 비츠’가 정기 모임을 열고 있다. 아쿠아 비츠 제공 동아대에는 주류학술동호회 ‘아쿠아 비츠’가 정기 모임을 열고 있다. 아쿠아 비츠 제공

동아대 ‘아쿠아 비츠’는 2023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정식 동아리가 됐다. 부산에서는 유일한 주류학술동아리로 정식 등록한 회원이 64명이다. 주류학술동아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학교 안팎에서는 우려가 컸다. 술을 많이 마실 테니 사고 발생도 잦아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동호회 정관의 회원 의무 1항에 ‘책임 있는 음주 태도 준수’를 명시하고,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아쿠아 비츠의 목적은 ‘세계 주류 문화 연구 및 탐방과 미식 조합’이다. 구체적으로 부산의 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특색을 가졌는지, 그리고 부산의 주류 문화는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매달 정기 모임 때마다 발표하는 팀을 정해 다양한 술에 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방식이다. 맥주바에 가서도 라거나 에일 등 먼저 제조 방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맛을 보면서 어떤 맥주인지 맞춰보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의 전공이 공대, 법대, 미대 등 다양해 술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아쿠아비츠 황상필 회원이 마신 술에 대한 품평을 쓰고 있다. 아쿠아비츠 황상필 회원이 마신 술에 대한 품평을 쓰고 있다.

이들은 주류학술동호회답게 MT 갈 때도 소주는 한 병도 들고 가지 않는다. 지난 MT에서는 칵테일 만들기 경연을 통해 각 조마다 새로운 술을 만들어 시상했다. 덕분에 새로 태어난 수십 개의 칵테일 맛을 비교하며 술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였다. 학생들에게 가입 동기를 물었더니 위스키, 칵테일, 와인, 코냑, 사케, 브랜디 순으로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신입생 한 명이 “전통주 콘텐츠 제발 해 주세요”라고 요청해서 전통주 양조장을 처음으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그냥 취하기 위해서 ‘부어라, 마셔라’였던 것 같다. 이들처럼 맛도 음미하고, 지식도 쌓아가면서 마시면 술도 아주 유익할 수 있겠다. 아쿠아 비츠의 향후 계획은 전통주, 맥주, 위스키로 구분해 부산의 술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양조장과 주류학술동호회의 운명적 만남


아쿠아 비츠 회원들이 가랑가랑 양조장에 모였다. 아쿠아 비츠 회원들이 가랑가랑 양조장에 모였다.

지난달 24일 사상의 가랑가랑 양조장에서 ‘가랑카세(가랑가랑+오마카세)’가 열렸다. 예전에 떡볶이 가게였다는 20여평 규모의 양조장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아쿠아 비츠 회원 8명이 앉자 한 명이라도 화장실에 가려면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발효조, 발효기, 숙성 탱크, 병입기 등 술을 빚는데 필요한 설비는 다 갖춰 전통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술을 만드는 효모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니 양조장에서의 식사는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양조장에 오면 특별한 술을 맛볼 수 있다. 먼저 비매품인 약주(물을 섞지 않은 원주)가 웰컴드링크로 나왔다. 위에 뜬 맑은 막걸리를 더 숙성시켜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맛이 났다. 이날 가랑카세는 약주와 제철을 맞은 밤수프로 출발했다. 단감샐러드와 ‘베리베리머치’가 다음 순서다. 이주운 양조사는 “베리베리머치는 많이 달지 않아서 식전주로도 어울린다. 한식·양식·중식, 치킨 등 모든 음식과 잘 어울리도록 설계해 뒀다”라고 말했다. 만든 이의 의도를 알고 마시니 더 맛이 느껴진다.


한식 요리사 출신 이주운 양조사가 만든 와사비타코 샌드위치. 한식 요리사 출신 이주운 양조사가 만든 와사비타코 샌드위치.

스파클링 와인 맛이 나는 자몽 막걸리는 뜻밖에도 와사비타코 샌드위치와 함께 나왔다. 조선 시대부터 먹어 온 ‘파전+막걸리’라는 식의 진부한 장르를 깨보고 싶은 의도라고 했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빨리 부른 게 단점이다. 막걸리의 안주로 이처럼 한 입 거리 정도의 가벼운 핑거 푸드가 더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 베리베리머치에 얼음을 넣었더니 진득한 느낌이 풀리며 하이볼처럼 산뜻한 맛이 났다.

한 솥 끓여온 가리비찜은 시각적 놀라움을, 등갈비와 닭조림은 먹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식 요리사 출신 양조사의 매력이 유감 없이 발휘되는 공간이었다. 아쿠아 비츠 박진홍 회장(국제무역학과 4학년)은 “저는 막걸리를 마시면 숙취가 심해서 막걸리에 약하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잘 안 마셨다. 그런데 오늘 마신 막걸리는 그동안 마셨던 것과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만든 프리미엄 부산 막걸리의 재발견이라고 하겠다.


이주운 양조사가 밤을 넣어 만든 밥을 내고 있다. 이주운 양조사가 밤을 넣어 만든 밥을 내고 있다.

어떤 특정한 음식만을 가려서 즐겨 먹는 걸 편식이라고 한다. 편식이 좋지 않다면, 편주도 좋지 않은 것 같다. 한식당에서는 와인보다 우리 술이 더 어울리는 법이다. 이렇게 양조장을 견학하고 그 양조장에서 나오는 여러 술을 비교해 마시니 이해도가 높아져서 좋았다. 지역에서 나온 전통주를 지역 대학생들이 널리 알리려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다. 가랑가량 양조장은 내년 대저 짭짤이 토마토가 나오는 계절에는 토마토를 이용한 새로운 스파클링 막걸리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그 맛이 궁금해진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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