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이후 고대사를 기록했다는 ‘환단고기’가 때아닌 화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업무보고에서 ‘환빠’ 논쟁을 아느냐고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물으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기존에 전해오던 각각의 책,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묶어 펴낸 책이다. 강단 사학계는 일찌감치 위서 판명을 내렸다. 고대에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 단어 사용, 환인 시대의 비현실적 집권 기간과 수명 등을 근거로 든다. 이 책을 옹호하는 쪽은 사료가 지극히 부족한 우리 고대사에 일부라도 살펴볼 부분이 있다면 적극적인 관점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로부터 전해진 사실을 엮을 당시 표현이 반영됐을 뿐이고, 집권 기간과 수명은 1인이 아니라 왕조의 집권기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1979년 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수십 부를 영인했고, 1982년 일본인 가시마가 이를 일역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을 계기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유립과 함께 1975년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했던 임승국이 1986년 ‘환단고기’를 국내에 출판하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공개됐다. 해방 이후 32년 만에 성공한 민주화 바람에,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고대사 기록 ‘환단고기’는 좋은 불쏘시개였다.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 의식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이 ‘환빠’ 논란의 배경이란 분석도 있다. 영국사 전공자인 박 이사장은 지난해 “2023년 한국 국민 수준이 1940년대 영국 시민보다 못하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주변국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재단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사관과의 관계를 지적 받기도 했다.
영국 역사학자 E.H.카의 명언이 떠오른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사료와 유물·유적 같은 객관적 근거, 이를 연구하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관점. 즉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결과가 역사라는 얘기다. 연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역사를 대하는 평범한 시민의 자세도 이와 같으면 좋겠다. 역사에 대한 어떤 주장을 펼칠 때는 사실과 해석을 정직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계는 베일에 쌓인 우리 상고사를 밝히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주변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누구나 동의할 역사의 최대공약수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이호진 선임기자 ji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