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5-12-15 18:26:20
1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인터뷰 중인 이우환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났네요. ‘이우환 공간’이 부산문화에, 특히 현대성을 심는 데는 하나의 암시적인 장소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전람회만 보는 게 아니라 이번처럼 음악회도 열고, 때에 따라선 강연회를 한다거나 춤이라든지 다른 것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다고 봐요. 여러 가지 현상을 보일 수 있는 장소로도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립미술관의 본관 활동이 더욱 다이내믹해져야 하겠죠!”
한국 최초로 부산에 문을 연 ‘이우환 공간’ 10주년을 맞아 부산시립미술관이 마련한 ‘보는 소리, 듣는 빛’ 기념 연주회에 맞춰 부산을 찾은 세계적인 작가 이우환(89)을 <부산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인터뷰는 14일 오전 파라다이스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아흔을 바라보는 이우환 작가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건 실로 오랜만이다.
경남 함안 태생의 이우환은 1960년대 말 ‘모노하’(物派)의 이론적 형성에 깊이 관여했다. 모노하는 돌·나무·흙·철판·유리·종이 등 일상적이고 비가공적인 재료를 사용해 관계와 만남의 의미를 찾는 일본의 미술 운동이다. 1970년대 실험미술과 단색화의 전개 과정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 현재 한국 생존 작가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미술 시장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공인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서구 중심의 인식 틀을 넘어선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기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잇달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인터뷰에서 음악과 미술의 융합, 예술철학, 그리고 고향 부산의 문화 역할 등을 강조했다.
'이우환 공간' 내부 전시 작품. 사진은 '관계항-좁은문'.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작곡가가 꿈이었던 ‘소년 이우환’
이우환 작가를 좀 안다는 사람은 안다. 그가 음악에도 얼마나 조예가 깊고 사랑하는지. 실제로도 그는 젊은 시절 음악 특히 작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작곡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음악 콤플렉스’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서양 고전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대여섯 살인가 옆집에 삼촌이 살았는데 레코드판이 많아서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심포니를 들었거든요. 중학교(경남중)에 진학하면서 부산에 왔는데 그땐 축음기가 아닌 직접 음악을 들으면서 촌놈이 쇼크를 받은 거죠. 다른 친구들은 이미 피아노도 치고, 바이올린도 켜는 거예요. 저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싶었어요. 그 후로 음악이 가까워진 게 아니라 되레 멀어졌어요.”
결국, 작곡가의 꿈은 포기했지만, 그는 음악을 떠나지는 못했다. 예술적 위상이 이미 확고한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지금도, “정수를 응축하고 새로운 울림을 만든다”는 그는 작업할 때 바흐 음악을 틀어놓곤 한다. “바흐 음악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가장 걸림돌이 없어요.” 말뜻을 알 듯 말 듯했다. “작품을 할 때 듣는 곡은 바흐가 많긴 합니다. 배경 음악으로 쓰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냥 틀어놓고 지나가는 식으로 듣는 편인데 치고 들어오지 못하니까요.” ‘걸림돌 없는’ 곡으로 듣는 바흐라니 새삼 놀랐다.
■기호학과 언어학을 불신하는 이유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저한테 음악은 어떤 의미에선 언어를 넘어선 언어예요. 문학 소년이기도 했으나 설명과 해명에 한계를 인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서사를 넘어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컸어요. 기본적으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려면 제일 가까운 것이 시각적이거나 청각적인 표현이었어요. 지식은 도구일 뿐, 직접 보는, 듣는 현상이 깊이와 멀리 나아가는 길입니다. 철학도 약간 배웠지만 기호학이나 언어학에 대해서는 불신이 대단히 많아요.”
기호학이나 언어학에 대한 불신은, 그의 예술 철학 핵심인 ‘모노하’(物派)와 ‘관계항’(Relatum)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양 근대 이후의 예술 이론에서 언어학이나 기호학은 예술 작품을 ‘의미를 담는 기호’로 보고, 작가의 의도나 사회적 메시지를 해석하는 틀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우환은 이를 거부했다. 그의 작품은 작가의 감정이나 사상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사물(돌, 철판 등) 그 자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이우환 공간' 2층에서 열린 '이우환 공간 10주년 기념 연주회: 보는 소리, 듣는 빛'에서 만난 이우환(오른쪽) 작가와 이하느리 작곡가.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13일 오후 5시 부산 해운대구 '이우환 공간' 2층에서 열린 '이우환 공간 10주년 기념 연주회: 보는 소리, 듣는 빛'가 끝난 뒤 이우환(오른쪽) 작가가 이하느리 작곡가가 건넨 ‘스터프(Stuff) 3번: 이우환의 정원’ 악보를 살펴보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시립미술관은 14일 오후 5시 부산 부산진구 부산콘서트홀 챔버홀에서 '이우환 공간 10주년 기념 연주회: 보는 소리, 듣는 빛'을 개최했다. 사진은 이하느리의 창작곡 ‘스터프(Stuff) 3번: 이우환의 정원’을 연주하는 앙상블 노마드 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음악의 ‘침묵’-미술의 ‘여백’이 통하다
전날 이하느리 작곡가의 신작 ‘스터프(Stuff) 3번: 이우환의 정원’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침묵’ 이야기가 생각나서 더 자세하게 설명을 부탁했다. “기본적으로는 음악은 침묵이 중요하다고 봐요. 침묵에서 시작해서 침묵을 깨트리는 걸로 끝이 나는 것처럼요. 대표적인 것이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 교향곡)이잖아요. 바흐도 마찬가지예요.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데도 쑥 나왔다가 쏙 꺼지는 그런 느낌 같은 거죠. 그런데 100% 소리가 없는 공간은 불가능합니다. 물리학적으로 ‘순수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순수’란 인간이 만든 관념적 허구에 불과해요. 완전한 백색, 완전한 무(無), 절대적 침묵, 이런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상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개념적 공간’일 뿐이에요.”
‘침묵’이 실제로 소리가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무언가를 들을 수 있는 상태’로 정돈된 지점을 뜻한다면, 그의 회화나 설치 작업의 빈 공간도 사실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관계의 긴장과 잠재적인 움직임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것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미술에서도 침묵을 다루는 작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잖아요. 문학처럼 서사적으로 하면 침묵이 끼어들기 힘들지만, 오늘날은 억지로라도 말을 끊고, 잠깐 침묵에 설 필요가 있다는 말이죠. 요샌 정보도 넘치고, 잡음도 많으니까요. 아무튼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역시 침묵에 개입해서 뭔가 다시 듣고 보는 것인 만큼 그런 계기를 만드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음악의 침묵 역할이 결국 미술의 여백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이우환 공간' 외부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부산 문화 보완하는 현대미술 공간” 되길
개관 10주년을 맞은 ‘이우환 공간’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동안 ‘이우환 공간’은 상설 전시장치고는 이례적으로 관람객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시립미술관 본관 리모델링 공사로 올해 관람객은 다소 저조했지만, 기획전이 아닌 상설 전시장에 연평균 10만 명 관람객은 적지 않은 숫자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오히려 “기존 전시뿐 아니라 음악, 무용,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계해 좀 더 활성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이우환 공간’이 부산에 들어서게 된 취지를 따지자면 그럴 만했다.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부산시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당시 부산시립미술관 조일상 관장이 신옥진 공간화랑 대표와 일본까지 와서 설득하는 바람에 결국은 수락했지요. 부담이 안 갈 정도로 하자 싶었는데 일이 자꾸만 커졌어요. 처음엔 방 4개 정도 생각했다가 그걸론 건물이 안 된다고 해서 키웠어요. 부산은 내 고향 같은 곳이니까 기왕 하려면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들어야 되겠다 싶기도 했어요. 당시만 해도 부산은 서울과 비교해도 문화가 풍성하다고 생각하기 힘들 때였으니까요.”
작은 바람을 보탰다. ‘이우환 공간’이 본관·별관 시스템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대해서 기획전과 상설전의 장단점을 합치면 좋겠습니다. 부산 문화의 현대성을 부여하는 역할에 공간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우환 공간' 내부 전시 작품. 사진 왼쪽은 '바람과 함께'(1990), 오른쪽은 '바람과 함께'(1988).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내년 뉴욕 ‘디아 비컨’에도 상설 코너 생겨
최근 국내외에 잇따라 들어설 움직임을 보이는 이우환 미술관 혹은 상설 전시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그러자 “아직은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지만, 내년 5월 미국 뉴욕의 한 미술관에 이우환 상설 코너가 생긴다는 반가운 소식은 전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술의 성지로 소문난 ‘디아 비컨’(Dia Beacon)은 그동안 미국계 일본인 외에 아시아 작가에겐 한 번도 문호를 개방한 적이 없었는데 이우환 코너를 만든다는 것이다. 2003년 개관한 디아 비컨은 소장품의 핵심이 바로 1960~1970년대 작품들이며, 당시 뉴욕 맨해튼의 화랑가와 함께 이 시기 예술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우환 작가는 올해 5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의 회화 작품 8점(‘점에서’, ‘선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시리즈 등)을 디아예술재단에 기증한다고 발표했고, 내년 봄(5월 8일 예정) ‘디아 비컨’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2019~2021년에도 이우환 작가는 ‘관계항’(Relatum) 시리즈 조각 작품을 ‘디아 비컨’에서 전시한 바 있다.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 수상 소식도
이우환 작가는 최근 독일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현대미술협회가 수여하는 제32회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작품은 내년 11월 7일~2027년 4월 4일 약 5개월간 루트비히 미술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1994년 제정된 볼프강 한 미술상은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 중 하나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개념 기반 작업을 펼친 현대미술가들에게 수여한다. 이우환 작가는 한국 작가로는 양혜규 작가(2018년 수상)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했다.
“독일은 유럽에서 저한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1974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에서 열린 ‘일본: 전통과 현재’라는 전시에 제 작품이 8점인가 소개되면서 세계 무대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그 이후 전람회 초대가 급격히 늘어났어요. 당시만 해도 쿤스트할레는 작가들의 유럽 등용문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독일에 제 팬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내년 루트비히 미술관 전시는 그리 크진 않을 거라고도 했다.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개최한 베를린 회고전(함부르크 반호프-국립현대미술관 개최)이 역대 최대 규모라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루트비히 전시는 그리 크지는 않을 겁니다.”
'이우환 공간' 내부 전시 작품. 왼쪽은 '물(物)과 언어', 오른쪽은 '관계항-지각과 현상'.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평생을 ‘돌을 찾아다닌’ 작가
역대급 전시 베를린 회고전 이야기가 나와서 뜬금없지만 돌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유럽 전람회 때마다 돌을 구하는 걸 힘들어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그에게 돌은 “평생을 찾아다닌” 어떤 것이다. 그의 전시에서 빠져선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전시가 이어지는 한, 그는 단단하고, 중량감이 있고, 성격이 없는 그런 둥그스름한 모양새의 돌을 찾아다녀야 하는 숙명인 것이다.
“어떻게든 돌을 찾아내지 않으면 전람회를 열 수가 없으니까요. 나만큼 돌을 찾아서 평생을 헤맨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옛날 아티스트는 아틀리에에서 작업만 하면 되지만, 지금은 쫓아다녀야 하고, 현장에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과 접촉한다거나 대화한다거나 활동력이 좀 있어야 하는 현대, 그러니까 우리라는 퍼포먼스 시대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에헴’하고 한자리에 앉아서 작품 해서 내면 되는 그런 시대는 아니에요.”
유독 기자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작가여서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싶어서 질문을 이어갔다. “내가 말도 약하고 마이너한 부분이 많은데 그래도 애를 써서 쫓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익숙지 않고 서툴고 뭔가 껄끄럽고 잘 안되는 데만 찾아다니는 게 제 평생이지요.” 하지만 그 만남은, 따지고 보면 ‘관계항’에 대해 작가가 직접 언급한 “나의 관심은 이미지나 물체의 존재성보다 만남의 관계에서 오는 현상학적인 지각의 세계에 있다”로 이해해야 할 듯싶었다.
'이우환 공간' 내부 전시 작품. 사진 위는 '대화'(2015), 아래는 '대화-발굴'(2015).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그리지 않은 것도 회화’…여백의 예술로
‘만남’ 이야기는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여백의 예술’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는 여러 화가의 화면 속에 보이는, 그저 빈 공간을 여백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평소 작가는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여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여백에 대해 물었다.
“여백이 있는 게 아니고 여백은 어떤 현상에 의해서 나타나는 공간이나 시간감이에요. 그저 비어 있는 건 아무 생명력이 없어요. 여백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한, 그러니까 뭔가 울림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백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무언가에 대해서 이루어질 때 그게 퍼져서 하나의 울림이 생기고 파장이 생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독일 출신의 화가이자 사진가로, 전후 독일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지그마 폴케(Sigmar Polke)라는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한다. “지그마 폴케는 개인적으로도 친한 작가였는데 그가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고. 게르하르트 리히터라는 동시대 최고의 작가가 있는데, 그가 추상도 하고 구상도 하고 별짓을 다 해 봤는데 딱 하나 안 해 본 걸 네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했더니 ‘그리지 않는 부분’, 즉 여백과도 통하는데, 그리지 않는 부분을 남기면서 그린 것의 일부와 그리지 않는 부분이 조인트 되면서 하나의 회화성을 나타낸다고 말입니다.” ‘그리지 않은 것도 회화’라는 말이 여백의 예술로 연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우환 예술의 특징을 아주 잘 지적한 대목이기도 했다.
■고독은 사유로 이어지는 과정, 꼭 필요
이우환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이십여 년간 자랐고, 그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60여 년을 살고 있으며, 그동안 50여 년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를 뛰어다니며 보내왔다. 아직도 ‘중간자’라는 생각이 드는가 싶었다. 그래서 늘 고독했다는 그가 아직도 같은 생각인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예술가는 고독한 거예요.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거나 자연과도 만나지만 결국은 한 바퀴 되돌아가는 습관을 만들고, 그것이 하나의 발효, 성숙 그러니까 되돌아설 수 있는 위치, 접점을 생각하니까 사람은 고독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야 정리가 되고, 자기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도 생각하게 되니까요. 사유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 되씹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이 필요한 거잖아요. 괜히 외롭다고 고독이 아니라 한 바퀴 한 바퀴 돌면서 돌아올 수 있는 접점을 소중히 여긴다는 게 고독인 거죠.” 디아스포라(Diaspora) 관점에서도 그는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는 “반도 국가 출신으로, 오랫동안 떠돌다 보니 거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이라고. 그와 이야기할수록 점점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우환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1956년 입학한 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14일 오후 5시 부산 부산진구 부산콘서트홀 챔버홀에서 '이우환 공간 10주년 기념 연주회: 보는 소리, 듣는 빛'을 개최했다. 사진은 연주회가 끝난 뒤 이우환(왼쪽에서 세 번째) 작가와 이하느리(오른쪽에서 세 번째) 작곡가를 비롯해 전 출연진, 부산시립미술관 관계자 등이 단체로 기념사진 찍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나와 타자, 나와 외부와 관계성이 중요
2022년 프랑스 아를의 고택을 안도 다다오가 개조한 ‘이우환 아를’ 개관 전후로 이우환 재단도 출범했다. 혹시 아카이빙센터를 국내에 만들 의향은 없는지 확인했다. “오랫동안 유럽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많아요. 일부는 일본에도 있고요. 한국에서도 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분이 많고, 아카이빙 이야기를 꺼내는 곳도 있는데, 그분들이 제 전시를 얼마나 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저는 압도적으로 유럽 활동이 많아요. 글도 마찬가지고요. 국내에선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들려달라고 했다. 꽤 긴 말을 했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오늘날은 정보가 발달하고 인공지능(AI) 존재감이 엄청 커진 시대인데 그건 그것대로 중요한 이슈이고 우리 생활이 빠르고 편리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전체가 대체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내가 생각할 때는 나와 타자, 나와 외부와 관계성이 중요해요. AI는 답만 찾아요. 관계는 상관없어요. 하나의 작업이나 어떤 해프닝이나 퍼포먼스를 통해서, 어떤 현상을 통해서 우리가 삶을 확인하고 다른 미지를 바라보는 차원이 중요합니다. 답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우리가 거기서 빼앗기는 시간이라든지 과정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이런 걸 되찾아야 해요. 그 많은 연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되길 바라요. 그래야 닫혀 있는 것이 아니고 열려 있는 표현이 될 테니까요. 우리는 형이상학이 약해요. 그냥 내뱉는 게 아닌 한 바퀴 두 바퀴 돌려 씹어서 내놓아야 합니다. 메타포, 은유에 대한 더 적극적인 시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