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 2026-11-07 09:26:08
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부비서실장 스티븐 밀러(왼쪽)가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가로질러 ‘마린 원(대통령 전용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3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지 사흘 만인 6일(현지 시간)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을 스티븐 밀러(41) 부비서실장으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밀러 신임 실장은 오는 9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밀러를 “내가 가장 신뢰하는 참모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와일스는 ‘트럼프 정치조직’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밝혔으나, 이 조직의 성격이나 와일스의 역할은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와일스가 훌륭하게 일해왔다면서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말해 이번 인사가 선거 패배에 따른 개편임을 시사했다. 와일스는 엑스(X)에 “평생의 영광”이었다며 대통령과 사명에 대한 헌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와일스는 2024년 대선 승리를 이끈 선거대책위원장 출신으로, 미 역사상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으로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 운영을 총괄해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와일스를 주요 인사 결정에서 배제했고, 캐롤라인 레빗 전 대변인의 후임도 상의 없이 정했으며, 다른 참모들 앞에서 와일스를 비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와일스 측은 대통령이 사실상 주도한 선거 전략의 실패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3월 1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케네디 센터 이사회 구성원들과 오찬을 하던 중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옆에 앉아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후임 밀러는 집권 1기부터 반이민 정책을 설계해온 대표적 강경파 측근이다. 2015년 첫 대선 캠페인부터 함께했고 첫 취임사 준비를 주도했으며, 1기에는 수석 정책고문을 지냈다. 2기에는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으로서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이끌었고, CNN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국내 정책 전반으로 영향력을 넓히며 대통령의 광범위한 행정 권한 행사를 적극 옹호해왔다. 측근들 사이에서는 ‘총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020년 대선 패배 이후에도 곁을 지켰고, 백악관에서 만난 아내 케이티 밀러와 함께 워싱턴의 '파워 커플'로 꼽힌다.
이번 인선은 핵심 정책 기조를 내려놓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강경 이민정책은 핵심 지지층의 호응을 얻었지만, 단속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가 목숨을 잃고 중소 사업체와 농장이 타격을 입으면서 중간선거 참패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밀러를 승격시킨 것은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공세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뜻이라는 분석이다. 진보 이념을 공산주의로 몰아붙이고 다양성 정책 폐기를 주도해온 밀러의 기용으로 여야 협력 여지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대외정책에서는 ‘힘이 국제질서를 좌우한다’는 시각이 우려를 낳고 있다. 밀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장악 의지를 드러냈을 때 CNN 인터뷰에서 세상은 힘과 권력으로 지배되며 이는 태초부터 이어진 불변의 법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악시오스는 밀러가 이란전에서도 강경 접근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NYT에 따르면 밀러는 비서실장 자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란전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따라 종전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도 조금 커졌다는 관측이 있다. 밀러는 관세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로, 2025년 5월 연방국제통상법원의 관세 불리 판결을 ‘사법 쿠데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8월 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함께 출생 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백악관은 별도 자료에서 밀러가 폭력 범죄 감소, 국경 보안 강화 등 현 행정부 성과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했다. JD 밴스 부통령 등 고위 인사와 공화당 의원 50여 명의 환영 발언도 소개했다. 반면 민주당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가 “위험한 외국인 혐오자”,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가장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정책을 설계한 인물”이라고 비난했고, 밀러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도 예고했다. 여권 내부도 편치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과 가까운 인사들을 인용해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다”고 전했고, CNN은 다수 행정부 인사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인사를 시작으로 백악관과 내각의 추가 개편이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최우선 타깃이 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 대해 공개적으로 교체 의향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일부 각료를 교체해 전열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