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 2023-10-27 15:26:11
25일 개봉한 ‘용감한 시민’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모두 보는 재미를 안기는 작품입니다. ‘용감한 시민’에선 신혜선의 화려한 액션이, ‘그대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유려한 작화가 눈길을 끕니다. 특히 ‘그대들’은 개봉 전날 65%라는 압도적 예매율을 기록해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2%씩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후기는 기사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용감한 시민’, 시의성 있는 소재에 그렇지 못한 연출
포스터부터 코믹함을 내뿜는 영화 ‘용감한 시민’의 감독 이름을 보고 놀랐습니다. 박진표 감독은 ‘너는 내 운명’(2005), ‘그놈 목소리’(2007), ‘공범’(2013) 등 주로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박 감독의 신작인 ‘용감한 시민’은 정의감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온 기간제 교사 ‘소시민’(신혜선)이 법도 통하지 않는 절대권력을 등에 업은 학교폭력 가해자 ‘한수강’(이준영)을 상대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시민이 부임한 무영고등학교는 학교폭력 예방 우수 표창을 받은 학교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완전 딴판입니다. 이 학교 재단과 연줄이 있는 한수강은 분노를 유발하는 안하무인 캐릭터입니다. 학교폭력 사태로 이미 2년을 유급당했는데도 집안의 재력과 권력을 믿고 또래를 괴롭힙니다. 동급생인 진형(박정우)을 때리는 소리를 교내 방송으로 중계하고, 교사들조차 수강에게 벌벌 떱니다. 아빠가 검사라는 설정에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아들의 학폭을 무마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한 정순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갑중의 갑’인 한수강과 비교하면 기간제 교사인 소시민은 ‘을중의 을’로 보입니다. 잘 나가는 프로 복서였지만 가난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던 소시민에게 이제 최우선 목표는 정규직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재단을 쥐락펴락하는 한수강의 심기를 거슬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선배 교사들도 시민에게 한수강의 패악질을 못 본 척하라며 ‘눈 감고 귀 막고 다니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한수강의 만행이 시민의 정의감을 자극합니다. 참다 못한 시민은 고양이 가면을 쓰고 수강을 쥐어패며 ‘참교육’에 나섭니다.
김정현 작가가 그린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용감한 시민’은 교권 추락과 학교폭력, 비정규직 문제 등 시의성 있는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씁니다. 언어유희 개그나 콩트를 적절하게 활용한 유머 포인트의 타율이 나쁘지 않습니다.
영화가 내세우는 포인트는 뚜렷합니다. 일부 홍보 포스터를 보면 예측할 수 있지만, 결국 영화는 시민과 한수강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집니다. 선 넘는 행동으로 관객의 분노 게이지를 잔뜩 채운 수강이 시민에게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모습이 통쾌함을 안깁니다.
법과 제도로 벌하지 못하는 나쁜 놈을 두들겨 팬다는 이야기 흐름은 ‘범죄도시’와 아주 유사합니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용감한 시민’은 이미 많은 관객에게 익숙한 범죄도시 시리즈와 별다른 차별점이 없습니다. 형사가 교사로, 범죄자가 학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통쾌한 맛이긴 한데, 너무 익숙한 맛이라 새로울 게 없습니다. 물론 마동석과 정반대의 날씬한 체형을 가진 신혜선이 건장한 남성을 제압하는 그림이 신선하기는 합니다.
통쾌한 한 방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다는 점도 고역입니다. 한수강이 저지르는 학교폭력은 수위가 상당해 참고 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교사인 소시민에게 성희롱과 추행까지 하는 장면은 분노와 함께 불쾌감까지 유발합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신혜선은 언론 인터뷰에서 “보는 분에 따라 학폭 장면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감한 시민’은 사회적 고발을 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물에 가깝다”면서 영화의 핵심은 “내 안에 가지고 있던 용기를 꺼내주고 대리만족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도 몰입을 방해합니다. 실제로 학교폭력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영화 속 무영고 같은 막장 학교는 실존할 수 없습니다. 원작인 웹툰의 설정을 옮겨오면서 생긴 한계로 보입니다.
작위적이고 진부한 연출도 아쉬움을 남깁니다. 특히 결말부는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 유치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또 무술에 통달한 소시민만 가능한 정의구현이라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못합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할 말 꾹꾹 참고 직장에 다니는 비정규직을 맡은 신혜선의 연기는 감정이입을 부릅니다. 안 그래도 부산은 5년 연속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접한 터라 씁쓸합니다. 화려한 액션까지 소화하는 신혜선의 모습에서는 반전 매력이 느껴집니다. 이준영도 가수 출신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사이코패스 악역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신혜선은 액션 연기를 위해 수개월간 액션학교에서 훈련을 받았고, 이준영은 심리적으로 힘들어 촬영 중 울기도 했다는 후문입니다.
몇몇 아쉬운 대목이 있는 ‘용감한 시민’이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와 선명한 메시지는 울림을 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학폭도, 권력형 학폭 무마도 영화 속 판타지로만 남아야 할 텐데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차 세계대전 중 도쿄의 한 병원에서 큰불이 납니다. 영화 주인공인 11살 소년 ‘마히토’는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구하기 위해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마히토는 큰 아픔을 안고 아빠와 함께 도쿄를 떠나 엄마가 살던 시골 저택으로 이사합니다.
이 저택에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특히 왜가리가 수상합니다. 어느 날 왜가리는 ‘엄마는 죽지 않았다.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까지 합니다. 마히토는 이를 믿지 않고 왜가리를 없애려 하지만, 갑자기 사라져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왜가리가 사는 탑으로 들어갔다가 ‘이세계’(異世界)에 빠집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10여 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벼랑 위의 포뇨'(2008) 등 숱한 명작을 낳은 미야자키는 2013년 ‘바람을 분다’를 끝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가 4년 만에 은퇴를 철회하고 이번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미야자키의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25일 아침에 찾은 극장은 관객으로 가득했습니다. 기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우선 영화 곳곳의 설정을 보면 한국인 입장에선 거부감이 느껴질 요소 투성이입니다. 일본을 2차 대전에 휘말린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히토의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원 화재는 도쿄 대공습을 연상케 합니다.
마히토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1년 만에 임신한 새엄마 ‘나츠코’가 마히토의 이모라는 점도 황당합니다. 마히토의 아빠는 처제와 재혼했다는 건데, 꽤 거북한 설정입니다.
게다가 마히토의 아버지는 군수공장 사장입니다. 2차 대전 일본군 기술력의 상징과도 같은 제로 전투기의 캐노피(조종사를 보호하는 덮개 부위 부품)를 보고 마히토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 악역으로 등장하는 앵무새들이 욱일기가 아니라 독일 나치당을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을 들고 있는 점도 ‘군국주의와 선긋기’를 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습니다.
물론 전작들에 반전 메시지를 담은 미야자키 감독이 정말 전쟁이나 일본의 과거사를 미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대들’에도 전쟁과 제국주의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잔뜩 있습니다. 관객의 오해는 자전적 설정에서 비롯됐습니다. 극중 마히토는 2차 대전 중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감독의 어린 시절이 투영된 캐릭터입니다. 상류층 집안, 군수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어두운 내면 등도 어린 미야자키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만 놓고 평가하는 일반 관객들 입장에선 충분히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보다는 스토리가 문제입니다. 플롯이 중구난방,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히토가 이세계에 흘러간 새엄마를 구한다는 큰 줄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 줄기를 타고 벌어지는 사건들은 제각각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대부분 갑작스럽고 불친절합니다. 개연성이 부족해 흐름이 뚝뚝 끊긴다는 느낌이 들고, 관객 입장에선 지루합니다. 실제로 기자도 졸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다만 결말부에 주체적인 삶과 관련한 메시지를 집약해 전달하는데, 의외로 울림이 있었습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복잡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상징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입니다. 불을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소녀 히미, 앵무새 대왕, 이세계를 지배하는 마히토의 큰할아버지 등 캐릭터들이 각자 상징하는 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를 단번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미야자키의 팬층과 일반 영화 팬들 사이에서 호오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팬층은 각 캐릭터나 구조물 등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 나름의 해석을 남기며 호평하고 있는 반면, 일반 영화 관객들은 지나치게 불친절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정작 미야자키의 팬들 사이에서도 메타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세계로 이끄는 신비한 탑 자체가 스튜디오 지브리이고, 탑의 주인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이끌어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아무쪼록 ‘난해하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영상미가 뛰어났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지브리 특유의 과장된 그림체와 사실적인 배경 묘사가 어우러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불티가 휘날리는 초반 화재 장면의 초현실적인 묘사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정교한 작화와 생생한 색감을 바탕으로 연출하는 이세계의 신묘한 분위기 역시 압도적입니다. 일본 영화음악 거장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조화를 이룹니다.
영화엔 또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가 많습니다. 그림체는 그대로인데 오마주가 많아 전체적으로 신선함은 떨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의 생명체인 ‘와라와라’입니다. 작고 떼지어 다니는 이 생명체는 ‘원령공주’(2003) 속 ‘코다마’나 ‘센과 치히로’ 속 숯검댕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미야자키의 팬이라면 일종의 향수를 느낄 수는 있겠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진하게 남습니다. 주인공인 마히토 캐릭터가 개성이 강하지 않아 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오나시’처럼 세계적으로 인기 끌 만한 캐릭터는 없고, 그나마 기억에 남는 건 왜가리 남자 정도입니다.
대중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27일 현재 ‘그대들’의 CGV 에그지수는 67%에 머물러 있습니다. 실제 완성도에 비해 다소 가혹한 감이 있지만, 그만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작품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팬이 아니라면 예매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참, ‘용감한 시민’, ‘그대들’과 같은 날 개봉한 ‘더 킬러’ 후기는 이전 ‘경건한 주말’에서 이미 다뤘으니 참고하세요. 세 작품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기자는 ‘더 킬러’를 고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