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2024-12-29 15:40:55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를 불사한 탄핵 공세에 나서면서 여야가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탄핵 정국 속에서 정부 수장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부처 장관과 경찰청장도 대행직으로 운영되는 등 정국 혼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난 2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이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 핵심 변수로 꼽혔던 가결 정족수는 총리 탄핵 기준에 준하는 ‘재적 과반’(151석)으로 정해졌다. 이는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의 판단이었다. 이에 국무총리(한덕수) 탄핵소추안은 당일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00명 중 192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92표로 가결됐다. 한 총리가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전달받으면서 지난 27일 오후 5시 19분부터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한 총리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관련법에 따라 직무를 정지하고, 헌재의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겠”"고 밝혔다.
다음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넘겨받았다. 이른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현실화한 것이다. 최 권한대행은 서면으로 낸 대국민담화를 통해 “지금은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는 국정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앞으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무총리 직무대행, 부총리 등 ‘1인 3역’을 소화해야 한다. 국회 몫 3인에 대한 헌법재판관 임명과 쌍특검법(내란상설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공포 여부 등 뇌관도 떠안게 됐다. 잇따른 ‘탄핵 러시’에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연쇄 탄핵’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루빨리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쌍특검법을 공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향해서도 “국민의 요청에 답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한 총리 탄핵안 표결 후 “또 하나의 작은 산을 넘었으니 내란을 진압하고 신속하게 국정 안정을 이뤄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즉각 임명해 국민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독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야당 리스크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에 요청한다. 혼란과 공포의 정치를 멈춰달라”며 “반헌법적 의결 정족수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연쇄 탄핵하는 초법적 권력행사를 멈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생각과 다르면 모조리 처단하겠다는 공포 정치를 시작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은 안 된다는 것이다.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헌재에 빠른 결론을 촉구하면서 “최 권한대행은 헌재 결정까지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보류하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만일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고 쌍특검법 공포 역시 거부할 경우, 민주당의 연쇄 탄핵은 시간문제다. 민주당 김윤덕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권한대행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임을 명심하고, 국민 명령에 따라 헌법 절차에 따라 혼란을 멈추는 길을 선택하라”고 경고했다.
한편,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당분간 여야 정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 의장을 비롯한 여야는 이날 일제히 관계기관의 협력을 강조하며 “정치권 차원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