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어제보다 나쁜 오늘은 없었어, 희망이 있었어”

■마산 / 김기창

‘기회의 도시’였던 70년대부터
코로나 한창인 2020년대까지
탈출을 꿈꾸는 세 세대 이야기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5-01-09 13:31:55

소설 <마산>은 마산이 ‘기회의 도시’였던 시절부터 젊은이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며 낡아가는 지금 모습까지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일대 마산자유무역지역. 부산일보DB 소설 <마산>은 마산이 ‘기회의 도시’였던 시절부터 젊은이들이 서울로 빠져나가며 낡아가는 지금 모습까지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일대 마산자유무역지역. 부산일보DB

“처음부터 고향을 사랑하긴 어렵다. 태어나자마자 놓여 있는 세계 같은 거니까. 고향은 떠난 이후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소설 <마산>을 쓴 김기창 소설가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저자는 고향이 마산이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마산을 떠나 산 시간이 더 길었던 모양이다. 소설에는 마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마산에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 마산 같은 도시가 한둘일까 싶기도 하다. 수도권에 살든 지방에 살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마산>을 읽고 고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장소에 대한 애착이 많아 보인다. 도시라는 장소를 소재로 쓴 장편 소설이 그에게 ‘오늘의 작가상’을 안겨준 <모나코>(2014년)와 <방콕>(2019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 소설에는 홍콩바, 통술집 거리, 돝섬, 3·15 의거탑, 만날고개 등 마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들 장소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는 세세하게 주석까지 달아 두었다.

소설 <마산>에는 1974년 동미와 석호, 1999년 준구와 레나, 2021년 은재와 태웅이 등장한다. 20년씩 차이가 나는 세 세대의 시대별 이야기는 마산을 넘어 한국 사회가 처했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잘 담고 있다. ‘썩은 자는 유흥가로 애국자는 일터로.’ 동미가 다니는 공장에 붙었다는, 지금 기준으로는 경악할 만한 표어다. 1970년대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약인 ‘타이밍’을 먹도록 강요했고, 노동조합을 만들면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의 대학생 준구는 중국으로 도망친 부모가 남긴 빚 때문에 시달린다. 도벽이 있는 친구 레나는 부족한 게 없었던 시절이었던 과거를 훔치고 싶어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은재는 아버지가 세운 호텔에 손님의 발길이 끊기고 빚이 불어나 절망적인 상황이다. 태웅은 팬데믹 탓에 식당 문을 닫은 어머니가 신장질환을 앓아 병원비에 허덕인다. 세대가 다르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동미 시절에는 그저 외국으로 나가기만을 꿈꿨다. 하지만 그 뒷 세대로 갈수록 ‘브레이킹 배드’ 같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헛된 꿈을 꾼다.

그것은 이미 마산과 함께 한국이 달라져서다. 과거 마산은 아직 기반시설은 부족했지만 ‘기회의 도시’였다. 준구 어머니가 “그땐 내일이 오늘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았어. 어제보다 나쁜 오늘은 없었어. 점점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확인이 된다. 하지만 은재와 태웅에게 지금 마산은 아니었다. ‘친구들, 대학 동기들, 후배들, 선배들 절반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서울 같은 대도시로 가려고 했다. 점점 낡아가는 이 도시처럼 자신의 삶 역시 한번 부풀어보지도 못한 채 수그러들기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마산은 20세기에 호출됐다가 21세기에 버림받은 도시였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별처럼 반짝였다가 IMF 외환 위기 전후로 찾아온 정보화 시대에 스리슬쩍 퇴출당한 후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결국 이름마저 잃은 도시였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마산과 이웃한 부산으로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마산에 눈 내리는 날은 과거 홈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처럼 희귀했다’라는 식으로 곳곳에 끼워 넣은 유머다. ‘배짱은 유료야. 집에 돈이 많으면, 기댈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질 수 있어’라는 식의 주장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말에서 한국을 떠난 동미는 2022년 가족과 함께 마산으로 돌아온다. 브라질 출생인 사위도 함께다.

이에 대해 김 소설가는 “사회 시스템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된 제도나 문화가 늘어나면 지방이 성장과 발전을 지속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테이블 서너 개를 놓고 장사하던 홍콩바(횟집촌)는 마산에 모두 64개에 달했다. 밤바다 곁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홍콩 야경을 연상시켜 홍콩바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홍콩바에서 소주 한잔하며 세상 걱정일랑 마산 앞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김기창 지음/민음사/400쪽/1만 8000원.


<마산> 표지. <마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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