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2025-01-12 18:23:53
부산시민공원 귀퉁이를 잘라내 지은 부산콘서트홀이 ‘공원 속 공연장’의 특색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수준 높은 공연장을 만드는 데 집중했을 뿐, 어떤 공연장이 더 나은 시민공원을 만들 수 있는지 세심하게 다루는 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의 대표 공원인 부산시민공원만큼은 각종 개발 행위에 공원 전문가의 참여 폭을 넓혀 ‘공원다운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11월 〈부산일보〉 취재진이 지역 건축사 A 씨,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사무처장과 찾은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 공원 내 산책로에서 바라본 콘서트홀은 마치 벽이 세워져 다른 공간으로 구분 지어진 모습이었다. 옹벽 앞에는 철제 난간이 설치돼 단절된 느낌을 더했다.
건축사 A 씨는 “공원과의 동시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마치 공원과 하나인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 공원 연계성을 갖춘 건축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한다면 부산콘서트홀의 옹벽 구간은 절반 정도 낮추거나 조경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원과의 조화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옹벽 구조는 지하출입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 설계사 측은 “지형의 고저차가 있다보니 다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조경 등을 개선할 수 있다면 아쉬운 부분들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을 주관한 부산도시공사는 설계 지침에 공원을 고려한 내용을 명시했다고 밝혔다. 설계 지침에 따르면 공모작에 대한 평가는 100점 만점 중 12점을 옥외공간 및 조경 계획 분야에 대한 평가로 배점하고, △주변 시설과의 연계성 및 환경 계획 △야외시설(공연장) 및 옥외공간 계획 △조경 및 공원 계획과의 조화 등을 평가항목으로 뒀다.
그러나 설계안을 뜯어고치고 검토하는 과정은 ‘공원’보다 ‘수준 높은 공연장’에 방점이 찍혔다. 총 18명으로 구성된 설계자문위원회에 토목·조경 전문가는 2명. 두 차례 열린 소위원회엔 10명 내외가 참석했는데, 토목 전문가 1명만 한 번 참석했을 뿐이었고 대부분 공연장 운영, 음악지휘자 등 전문가들이 주로 참석했다.
공원 연계성 보완 주문이 나온 적도 있었지만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2019년 시공사 입찰 방식을 평가하는 건설기술심의에서 조경 분야 전문가가 입찰 제안서 내용에 △시민공원에 조성되는 건축물로서 공원과의 연결성 강조 △식재를 통한 외부 공간의 연결 추가 사항 등을 작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시공사 입찰 심의에서도 조경 전문가가 추가적 공원 연계 계획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 지하출입로의 옹벽 높이 수정 등 기존 설계 내용을 크게 바꾸는 역할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부산시 도시공원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도 ‘공원 보전’ 관점이 축소됐다. 당초 위원회는 콘서트홀 준공 전까지 대체 주차장을 조성하고 지상 주차장을 제외하라는 의견을 냈다. 도시공원위원회가 낸 사실상 유일한 조건이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준공 전까지 주차장 설계 용역을 착수하는 것으로 지난해 3월 변경됐다.
업계에서는 공모 과정에서 충분히 공원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발주 단계에서 조경가와 설계사가 파트너를 이뤄 공모를 하도록 한다든지, 총괄건축가처럼 공원 마스터플래너를 정해 공원 내 건물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방식 등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사무처장은 “공원에 공연장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면, 공원 기능을 보존하며 유휴 공간을 더 많이 남겨야 한다”며 “앞으로는 공원에 더 이상 건축물을 짓지 않는 게 바람직하고, 검토하더라도 형식에 그치지 않는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