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옻칠의 현대적 재해석… ‘하우스 오브 알파’ 개관

이현승 작가·나비플렉스의 만남
옻칠 공예로 감각의 신공간 탄생
23일부터 한 달간 개관 기념 전시
K-헤리티지 실험 플랫폼으로 주목
지속가능한 옻칠 산업 성장 기대도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2026-01-22 09:00:00

부산 동래구 안락동 주택을 개조한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동래구 안락동 주택을 개조한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하우스 오브 알파' 전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하우스 오브 알파' 전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이것도 옻, 저것도 옻, 여기 있는 대부분이 옻인 거죠?”

부산 동래구 안락동의 한 오래된 단층 주택이 새로운 숨을 얻었다. 부산의 옻칠 공예가 이현승의 작업실로서 오랜 세월 누적된 시간의 결이 젊은 디자이너들의 현대적 시선과 결합하며 ‘하우스 오브 알파’(House of Ahlfah·명안로 26번길 51)로 변신했다. 이곳은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공예 공간이라 할 만하다. 이곳에서 23일부터 약 한 달간 ‘하우스 오브 알파’ 개관전을 연다.

이 공간의 기획자이자 K-헤리티지 레이블 기업 (주)나비플렉스를 이끄는 박진솔 대표는 “한국적인 비례감과 수공예적 온기를 살리되, 전통을 ‘보존’이 아닌 ‘진화’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울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런던대(UCL)에서 개발학(Development Administration)을 전공한 그는 UNDP(유엔개발계획) 근무 경험을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가졌다. 천연 소재인 옻칠의 친환경성과 기능성에 주목한 것도 바로 그 연장선이다.

“옻은 항균·방습·방충·방부 기능을 갖춘 재료이자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가장 오래된 고기능 코팅 기술 중 하나입니다. 이미 완벽한 친환경 재료이지만, 천 년 이상을 동일한 방식만 고집해 왔죠. 우리는 옻의 과학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알파'에서 만난 (주)나비플렉스 박진솔(왼쪽) 대표와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동래구 안락동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알파'에서 만난 (주)나비플렉스 박진솔(왼쪽) 대표와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나비플렉스는 공예 전시 공간 외에도 ‘크래프트 나비’라는 옻칠 제품 전문 브랜드를 운영한다. 특히 상온에서도 건조 가능한 신소재 도료를 개발 중으로, 이는 전통 옻칠의 가장 큰 제약인 고온다습 조건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다. 항균성과 내구성 실험 결과 역시 우수했다. 박 대표는 “상온 경화 옻 도료 기술은 지난 몇백 년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이라며 “향후 건축 마감재나 인테리어 필름 등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하우스 오브 알파’는 이 기술을 공간 전체에 적용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벽과 문틀, 계단, 작업대, 의자까지 천연 옻칠이 입혀졌다. 신기한 게 옻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은 신경계통과 반응하면 약간의 가려움증을 유발하지만, 이게 마른 뒤에는 문제가 없다.

'하우스 오브 알파'에서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하우스 오브 알파'에서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이 작가는 “이 공간 전체가 곧 하나의 옻칠 작품”이라면서 “벽부터 바닥까지 전부 사람의 손을 거친 공간이란 점에서 ‘손을 찾는 손’(A Hand Looking for Hand)이라는 알파(Alpha)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박 대표도 “‘A Hand Looking For A Hand’의 약자에서 따온 ‘알파’이지만, 손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어떤 매개 공간이 되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하우스 오브 알파’의 부산 프로젝트는 나비플렉스가 지난해 2월 오픈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알파 콜렉티브’(Ahlfah! Collective)로부터 출발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알려진 이곳은 4층짜리 건물로, 1층은 카페, 상층부는 전시 공간과 디자인 사무실로 구성돼 있다. 젠틀몬스터 등 다양한 브랜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도 병행 중이다.

“서울은 문화가 중첩된 도시라 다양한 협업을 뜻하는 ‘콜렉티브’라는 단어가 어울렸어요. 반면 부산은 우리에게 뿌리이자 집이기에 ‘하우스’라 이름을 붙였고요. 솔직히 서울이라는 장소가 주는 어드밴티지가 있어요. 특히 예술에서는 시장이 훨씬 크기도 하고, 특히 신사동 가로수길은 문화 중심지라는 약간의 상승 효과도 있고요. 그래도 본사는 부산입니다.”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이현승 옻칠 공예가. 김은영 기자 key66@

옛 부산여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예술대에 유학한 이 작가는 옻칠을 “한국인의 손이 남긴 예술이자 재료학적 응축물”로 본다. 유백색 생옻 수액이 산소와 만나 암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색과 질감은, 그 자체로 시간의 미학이다. 그는 도자, 목공, 건칠 등 장기간에 걸친 공정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입히며 ‘옻의 느린 시간’을 오늘의 감성으로 번역한다.

말린 옻나무 열매. 김은영 기자 key66@ 말린 옻나무 열매. 김은영 기자 key66@
'하우스 오브 알파'에 전시 중인 작품. 나비플렉스 제공 '하우스 오브 알파'에 전시 중인 작품. 나비플렉스 제공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김은영 기자 key66@ '하우스 오브 알파' 실내. 김은영 기자 key66@

그러고 보면 ‘하우스 오브 알파’는 단순히 전시장이 아니라, 한국 전통미를 기반으로 새로운 K헤리티지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실험이기도 하다. 공간 곳곳에 깃든 옻의 물성과 빛, 공예적 디테일은 물질적 재료를 넘어 정서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박 대표는 “전통은 지켜야 할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의 손끝에서 다시 숨 쉬는 생명체”라고 말한다. 이현승 역시 “옻칠은 한국인의 손이 남긴 예술이자 재료학적 응축물로, 느림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며 그 철학을 공간 안에 옮겨 놓았다.

젊은 세대의 감각과 장인의 손끝이 만나 탄생한 ‘하우스 오브 알파’는, 한국 공예의 내일을 실험하는 새로운 장이 되고 있다. 개관전은 2월 2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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