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2026-06-16 15:30:30
16일 카보베르데의 골키퍼 보지냐가 스페인과의 경기 뒤 카보베르데 국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6일 로스엔젤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G조 이란과 뉴질랜드 경기에서 이란 관중들이 이란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40세의 무명 골키퍼가 무적함대를 멈춰 세웠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의 월드컵 첫 출전국 카보베르데가 강호 스페인과 무승부를 기록하며 월드컵 ‘이변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썼다.
카보베르데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스페인과 0-0으로 비겼다. 경기 전까지 이같은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위의 스페인은 ‘초신성’ 라민 야말(바르셀로나), 마르크 쿠쿠레야(첼시), 로드리(맨체스터 시티) 등 세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한 강호다.
반면 카보베르데는 무명 선수들로만 전열이 채워진 ‘약팀’이다. 월드컵 출전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되지 않았다면, 본선에 오르지 못했을 팀을 꼽을 때 첫손에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카보베르데의 육탄 방어를 무적함대는 넘어서지 못했다. 스페인은 경기 내내 무려 804개의 패스를 시도해 745개를 성공(성공률 93%)시키며 카보베르데(총 패스 시도 304개)를 몰아붙였다. 27차례의 슈팅을 쏟아부었고 측면에서 40개의 크로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수비벽을 촘촘하게 세운 카보베르데에 막혀 유효 슈팅은 7개에 그쳤다. 크로스가 동료에게 정확히 연결된 것도 단 6차례에 불과했다. 스페인은 후반에는 부상 회복 중인 신성 라민 야말까지 투입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의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카보베르데 철벽 수비의 중심에는 불혹의 수문장 보지냐(40)가 있었다.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오기는 했지만 전반 38분 페드리의 슛을 크로스바 위로 쳐내는 선방을 선보였다. 보지냐는 3분 뒤에는 미켈 오야르사발의 헤더도 걷어내면서 스페인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전반 막판에도 토레스의 슛과 에므리크 라포르트의 헤더를 모두 막아냈다. 보지냐는 이날 경기 MVP로 선정됐다.
카보베르데에서 보지냐는 ‘국민영웅’이다. 총 88번의 A매치에 출전하며 카보베르데 역대 최다 출장 2위에 올라있다. 카보베르데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아프리카 예선 D조에서 10경기를 치르며 고작 8실점만 허용했는데, 무려 7번의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기록한 보지냐의 역할이 컸다. 카보베르데는 보지냐의 활약을 앞세워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카메룬을 2위로 밀어내고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뤘다.
카보베르데의 사상 첫 월드컵 승점 획득을 알리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보지냐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뉴욕 포스트’는 “40세 골키퍼가 월드컵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평생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고, 단 한 경기 만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고 호평했다. 보지냐는 “나는 이 순간, 이 꿈을 위해 평생을 일했다”며 “과거의 많은 세대가 이날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월드컵 개최국 미국과 종전에 합의한 이란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조별리그 G조 경기에서 뉴질랜드와 붙어 2-2 무승부를 거뒀다. 이란은 경기 직후 훈련지인 멕시코 티후아나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시를 내린 주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란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도 대표팀 관계자 4명의 입국이 불허되기도 했다. 이란은 미국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데 모두 경기 전날 미국에 입국하고 경기 직후 미국을 떠나야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두 전설 케빈 데브라이너와 모하메드 살라가 맞붙은 G조 벨기에와 이집트 경기는 1-1로 비겼다. H조 사우디는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1-1로 비기며 이번 대회 아시아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