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 2026-07-17 16:58:00
김홍석 ‘실의 숨결’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 전시 전경.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 Opening and Shutting(개폐), 연도미상. 조현화랑 제공
최병훈, Afterimage of beginning 026-641(2026). 조현화랑 제공
부산 조현화랑_달맞이(달맞이길 65번길 171)와 조현화랑_해운대(해운대해변로 298번길 5)에서 서로 다른 결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본점 격인 달맞이에서는 실과 한지로 한국 현대미술의 다른 계보를 열어 보인 김홍석의 ‘실의 숨결’(Where Threads Breathe)이, 해운대에서는 40여 년간 아트퍼니처의 지평을 넓혀온 최병훈의 ‘머무는 침묵’(Lingering Silence)이 관객을 맞는다. 재료도 세대도 다르지만, 두 전시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시간과 물성으로 바꾸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한다. 달맞이의 김홍석이 실과 한지로 숨결을 길어 올린다면 해운대의 최병훈은 돌과 나무로 침묵을 빚어낸다. 전시장에 남는 것은 화려한 설명보다 오래 머무는 조용한 감각이다. 달맞이에서도 최병훈의 작품 일부를 만날 수 있다.
최병훈, Afterimage of beginning 026-642(2026). 조현화랑 제공
최병훈의 작업은 아트퍼니처의 범주를 넘어선다. 나무와 돌, 옻칠 같은 전통적 재료는 그의 손끝에서 기능적 사물이 아니라 사유의 대상으로 변한다. 자연석이 상판을 받치고 정제된 목재의 결이 깊은 광택을 띠는 작품들은 투박함과 절제, 원시성과 현대성이 한자리에서 긴장한다. 작가는 돌을 곧바로 다루지 않고 오래 바라본 뒤 최소한의 방식으로 개입하고, 목재 역시 재료 본연의 결이 드러나도록 다듬는다. ‘만드는 행위’보다 ‘기다리는 태도’에 가까운 이 방식은 작품 전체에 조용한 밀도를 부여한다. 이번 전시에는 장, 테이블을 포함한 ‘애프터이미지 오브 비기닝’(afterimage of beginning) 시리즈의 최근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조현화랑 전시장에서 만난 최병훈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달 전시 개막에 맞춰 부산을 찾은 그는 침묵을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 위에 내려앉아 사물의 깊이가 되는 상태”로 설명했다. 한 관람객이 돌과 나무의 관계를 두고 “다름이 아니라 같음”을 떠올렸다고 말하자, 최병훈은 우주의 거친 에너지와 자신의 손길이 닿은 현대성이 접합돼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고 답했다. 작품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관람객들의 태도 역시, 이 전시가 요구하는 감상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조용히 서서 오래 바라볼수록 작품은 가구가 아니라 조각으로,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공간으로 바뀐다.
김홍석 ‘실의 숨결’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 2층 전시 전경.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 작가 작품 속 실밥과 매듭 장면(부분). 김은영 기자 key66@
김홍석(1935~1993) 전시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머무름’을 사유한다. 그의 작업은 화필 대신 바늘과 실을, 물감 대신 한지를 사용해 화면을 구축한다. 실을 캔버스 뒤에서 앞으로 하나씩 뽑아 올리고, 한지를 덧입혔다가 다시 뜯어내는 반복 행위는 단순한 수공이 아니라 화면에 시간의 층위를 새기는 방식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김홍석의 작업 중 ‘개폐’와 ‘발아’ 연작에 집중으로써, 생성과 변화의 과정을 품은 그의 서정적인 화면에 드리운 진동하는 회화적 상태를 조망한다. ‘개폐’ 연작은 열림과 닫힘 사이의 긴장을 응축하고, ‘발아’ 연작은 그 안에 잠재한 힘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순간을 드러낸다. 표면은 정지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실밥과 찢긴 흔적, 미세한 돌출이 만드는 진동이 화면 전체를 흔든다.
김홍석, Sublimation(승화, 1976).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 '승화'(Sublimation) 작품의 세부(확대) 사진, 1976년 작, 캔버스 위 실에 유화 물감.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 ‘실의 숨결’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 1층 전시 전경.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의 작업이 한국 현대미술사와 단색화의 흐름 속에서 다시 조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붓질 대신 반복, 재현 대신 생성, 완결 대신 잠재를 선택한다. 화면은 비어 있는 정지가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에너지의 장이며, 실과 한지의 흔적은 그 에너지가 어떻게 보이는 형상으로 바뀌는지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살아간 선조들의 숨결과 한을 화면에 담아낸다.
조현화랑 주민영 공동 대표 사회로 전시장을 찾은 김홍석의 딸 김미정(맨 왼쪽) 씨와 김홍석 전시 기획자 기혜경(가운데) 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홍석 작가가 제공한 프로필 사진. 조현화랑 제공
김홍석 개인전을 찾은 고인의 딸 김미정 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33년이 되는데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아버님이 진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왜 유화를 안 하시고 바느질을 하시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이렇게 재조명해 주시니 정말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홍석 전시를 기획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기혜경 홍익대 교수는 “한국 현대미술사와 단색화 흐름 속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할 김홍석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게 돼 감회가 새롭다”면서 “김홍석 선생님의 작업을 보면 그 안에서 꿈틀대는 어떤 힘들, 서로 충돌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힘들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8월 2일까지 이어지며, 관람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다. 김홍석 전시를 기획한 기혜경 교수 초청 강연이 18일 오후 2시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열린다. 사전 예약 필수. 문의 051-747-8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