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반대를 주장하며 정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노조원의 모습. 부산일보DB
난치병에 걸린 50대 초반의 가장이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는 병이어서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으나 다행히 최근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돼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문제는 이 치료법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가계의 기둥뿌리가 뽑힐 정도로 거액의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이 가장은 과연 치료를 받으려 할 것인가.
이 사례는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자주 제기하는 딜레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 병자에겐 세계 최악의 지옥이라 불리는 이유로도 자주 꼽히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에서 출발한 논의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이 같은 구멍을 메울 수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곧잘 발전한다. 국가가 담당하는 필수 서비스의 강화로 개인의 막대한 부담을 막아야 한다는 이 논리는 의료 민영화 시도도 곧잘 제동을 걸어 왔다.
■또 다른 민영화
의료 민영화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구조적으로 평행을 이루는 존재가 있다. 바로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된 형사소송법 개정 내용이다.
의료 민영화 비판의 핵심은 국가가 담당하던 필수 서비스를 개인이 시장에서 스스로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써야 하는 구조로 전환된다는 데 집중된다. 이런 논리를 이번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형소법 개정에 적용해 보면 구조적 평행이 드러난다.
바뀐 형소법에 따라 종전에 검사로 대표되는 국가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 작업을 이제는 피해자가 자비로 변호사를 고용해 해결해야 할 판이 됐다. 공적인 의료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던 병원 치료를 사보험과 자비 부담으로 넘기는 것이 의료 민영화라면 사법 시스템의 이 같은 변화도 ‘사법 민영화’ 혹은 ‘검찰 민영화’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
■누가 비용을 치르나
의료 민영화에 빗댄 사법 민영화가 비유로서 성립하는 이유는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앞서 난치병에 걸린 50대 가장의 사례에서는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만 살 수 있다면 과연 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지가 딜레마였다. 마찬가지로 거액의 변호사비를 부담해야만 제대로 된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면 피해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가장 큰 문제는 비용 부담 능력이 없거나 모자란 계층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국가 몫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겠지만 의료 민영화가 되어도 기존 의료보험으로 어느 정도는 치료비 감당이 가능하다. 경제적 약자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보호 제도 같은 것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법의 민영화 이후로도 공적 제공 영역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주장한 것처럼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이 그에 해당할 터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 국선 변호사 선임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국선 변호사를 무한정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한다던 유럽 어느 나라에서 병자가 치료에 돈이 안 드는 대신 의사를 만나보려고 기다리다 죽었다는 우스개처럼 국선 변호사를 기다리다 사건의 결정적 시기를 놓치는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사법의 민영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부산일보DB
■민영화가 아니라면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조치를 사법의 민영화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다. 그 조치가 의료 민영화처럼 민간시장으로 서비스를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경찰로 국가 기관의 기능을 재배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남아있는 한 피해자의 자비 변호사 선임 시나리오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보완 설명'도 곁들여진다.
이 같은 주장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이 사법의 민영화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으려면 논의는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경찰을 사법 서비스의 공적인 대체 공급자로 인정할 경우 그동안 검사가 무상으로 제공하던 ‘수사 결과의 법률적 완성’을 경찰이 균질하게 제공할 수 있을지 여부다. 그 논의에 대한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한다는 대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소법 개정을 향한 사법의 민영화라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시스템을 방치하는 대한민국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