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머리에 딱 맞는 숨겨진 명작 ‘디센던트’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2024-01-05 15:13:00

넷플릭스가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업로드한 영화는 4편입니다. ‘클릭’(2007), ‘미녀 삼총사3’(2020), ‘엑소더스: 신들과 영웅’(2014) 그리고 ‘디센던트’(2011)입니다. 기자는 조지 클루니 주연의 디센던트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작품은 2012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누적 관객수는 5만 3000여 명에 그쳤습니다. 기자 역시 이 작품을 처음 봤는데, 11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영화 ‘디센던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영화 ‘디센던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연말연시 어울리는 잔잔한 드라마 ‘디센던트’

디센던트는 카우이 하트 헤밍스라는 미국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서 작품상, 미국 작가 조합상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각각 받았습니다.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다는 건 증명된 셈입니다.

연출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맡았습니다. 페인의 작품들은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게 특징입니다. 잭 니콜슨 주연의 ‘어바웃 슈미트’(2003)와 산드라 오가 출연했던 ‘사이드웨이’(2005)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호평 받았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공개된 ‘바튼 아카데미’ 역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디센던트는 변호사인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미국 본토에 사는 맷의 친구들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자신의 하루하루가 바캉스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맷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아내 엘리자베스입니다. 얼마 전 모터보트 시합 중 사고로 머리를 다친 엘리자베스는 혼수상태에 빠져 3주 이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제 맷은 엄마에게 일임했던 딸들의 양육을 도맡아야 하는데, 영 쉽지 않습니다. 제멋대로인 막내딸 스코티(아마라 밀러)는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최근 엘리자베스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맷은 아내가 깨어날 것이라 굳게 믿고, 회복되기만 하면 예전처럼 가까워지리라 마음 먹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합니다. 아내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며, 절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겁니다. 식물인간으로 살 수 있을 뿐이니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버릴 것을 조심스레 권하는 의사의 말에 맷은 충격에 빠집니다.

맷은 사립학교에 다니는 큰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를 데려와 비보를 전합니다. 슬픔에 빠진 알렉산드라는 사실 엄마가 외도 중이었다고 맷에게 고백합니다. 지상천국 하와이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가 된 맷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맷에게는 또 다른 골치 아픈 문제가 있습니다. 조상이 19세기부터 소유한 광활한 미개발 토지를 누구에게 매각할지 결정할 권한이 그에게 있습니다. 땅을 매각하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사촌들은 물론이고, 하와이 전체 주민들의 시선이 맷에게 쏠려 있습니다.

영화 ‘디센던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영화 ‘디센던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새삼스럽지만, 결국 중요한 건 가족

디센던트는 영리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의 드라마 장르지만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죽음을 앞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남편’이라는 설정부터 흥미를 끕니다. 맷이 큰딸과 함께 상간남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마찰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기술도 상당합니다. 전개가 지루한 영화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보다보면 수시로 일시정지를 누르고 딴짓을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디센던트는 맷이 파렴치한 상간남을 어떻게 대할지, 아름다운 경관의 상속지를 개발업자들에게 팔아버릴 것인지 궁금해 일단 재생을 누르면 끝까지 보게 됩니다. 심각한 상황에 배경으로 깔리는 정겨운 하와이 음악과 고즈넉한 풍경은 복잡한 맷의 심경과 대비돼 묘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합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신파는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맷이 아내를 떠나보내는 과정과 방식을 보면서 관객은 자연스레 가까운 사람의 죽음, 또는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잉된 감정 연기나 슬픔을 고조시키는 음악 따위가 없어도 인물들의 감정선에 이입하기 쉽습니다.

캐릭터들도 매력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맷을 맡은 조지 클루니의 명연기입니다. 그가 절제된 감정 연기로 탄생시킨 맷 킹은 인내와 고뇌의 순간들로 점철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여느 부부가 느끼는 애증이라는 감정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명대사와 함께 아내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입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작품으로 이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상간남을 찾는 아빠를 따라 나선 두 딸의 연기도 수준급이었습니다. 큰딸 역의 쉐일린 우들리는 10대 소녀의 심리를 생생하게 표현해 이듬해 MTV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극중 막내딸 스코티는 원작과 달리 결말부에서야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순진무구하고 천진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아역배우인 아마라 밀러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디센던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족애를 강조합니다. 뻔한 미국 영화식 메시지이긴 하지만, 담백한 연출을 바탕으로 서사를 켜켜이 쌓아올린 덕에 가슴에 와닿습니다. 극중 맷은 비행기에서 하와이 섬들을 내려다보며 가족을 ‘군도’에 비유합니다. 전체적으론 하나지만 각자 분리돼 있고, 서로 점차 멀어지는 것이 가족이라는 겁니다. 일자리 찾아, 살 곳 찾아, 새로운 가족을 이뤄 서로 멀어지게 된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 디센던트는 연말연시에 알맞은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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