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 2025-06-24 20:30:00
부산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이 지난 20일 개관하면서 부산의 공연예술계에도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특히 1988년 개관 이래 40년 가까이 부산 공연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 온 부산문화회관의 위상이 흔들릴 위기다.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도 개관을 앞두고 있어 또 한 차례 거센 변화의 물결이 덮쳐올 전망이다.
■정체성 위기 맞닥뜨린 문화회관
먼저 클래식 공연의 중심이 콘서트홀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비수도권 공연장으로서는 최초로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무대를 둘러싼 빈야드(포도밭)형 연주홀, 2000석이 넘는 객석 등 시설의 질과 규모에서 모두 문화회관을 압도한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지휘자 정명훈을 초대 예술감독으로 위촉했고,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정상급 아티스트를 개관 무대에 올리면서 콘서트홀로의 ‘관객 쏠림’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콘서트홀 개관 기념 페스티벌의 대다수 공연 티켓이 예매 시작 수분 만에 매진된 것도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클래식 전용인 콘서트홀과 달리 문화회관은 ‘다목적홀’ 성격이 짙어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거기다 음향이나 조명 등 노후화된 시설로 인한 아쉬움도 적지 않다.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편의시설도 부족해 문화회관을 찾은 관객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부산 최대의 문화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지적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방문하기 불편하다는 차원을 넘어, 핵심 시설인 대극장 조차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면화’ 사업·리모델링 활로 모색
문화회관은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하드웨어 개선에 나섰다. 내년부터 1년 동안 낙후된 시설을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대극장 등의 무대 기계 시설을 최신화하면 콘텐츠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대극장은 무대 주변 공간(백 스테이지)이 다른 공연장에 비해 넓게 확보돼 있어 초대형 공연을 소화할 수 있고, 어떠한 이벤트도 치러낼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부산문화회관 남영희 공연예술본부장은 “대규모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등 여러 장르의 콘텐츠를 수용해 클래식 음악 분야 외의 질적 수준이 높은 다양한 공연예술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가와 공원 사이에 파묻혀 있는 문화회관의 외관을 부각할 수 있는 ‘정면화’ 사업도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문화회관과 유엔기념공원 사이의 터널을 없애고, 인근의 부산박물관 쪽과 폭넓게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게 되면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대외 이미지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편의시설과 부대시설을 위한 공간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리브랜딩’(기관명 변경)도 문화회관 재도약의 핵심 작업이다. 부산문화회관은 문화회관과 시민회관이라는 두 개의 문화공간을 동시에 운영하는 재단법인의 명칭이다.
실제로는 하나의 기관이지만 각각의 시설명으로 분리돼 불림으로써 불거진 내부 갈등 해소와 화합을 위해 기관명을 바꾸기 위한 시민 공모를 했다. 지난 10일까지 진행된 공모에는 250여 건의 제안이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회관 관계자는 “아주 파격적인 명칭도 들어왔다”면서 “내부 공모, 심의, 공청회 등을 거쳐 다음 달께 변경된 명칭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부산시의회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 리브랜딩을 최종 마무리할 예정이다.
■경쟁 넘어 ‘상생·협력’ 관계로
문화회관은 콘서트홀이 갖고 있지 못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비교우위’를 내세운다. 공연 콘텐츠 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습 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7개 예술단체가 속한 부산시립예술단이라는 ‘엔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시향의 한 단원은 지난달 23일 콘서트홀에서 시범공연을 마친 뒤 연습실과 대기실 공간 부족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부산시향이야 가까운 곳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불편을 잠시나마 감내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 오는 연주단에게는 상당한 불만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회관은 여러 장르의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무대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부산문화회관 차재근 대표는 “문화회관은 이런 시설들을 바탕으로 교육·전시·아카데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콘서트홀에는 없는 고유의 역할을 잘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 대표는 “콘서트홀이 클래식 음악 붐을 형성해 주면 ‘나비 효과’를 불러와 시민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서 “문화회관이 콘서트홀과 차별화되는 쪽으로 명확한 성과를 낸다면 이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부산음악협회 권성은 회장은 “문화회관은 그동안 다목적홀로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수용해 왔지만, 클래식 연주에 있어 음향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면서 “부산콘서트홀 개관을 계기로 문화회관은 물론 지역의 기존 공연장들이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과 지역 밀착형 기획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