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 2025-12-05 09:00:00
전교 1등 하던 형과 달리 전교 꼴등인 중학생 동생이 있었다. 항상 형과 비교되었지만, 동생은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 보니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성향이 매우 높았다. 일찍부터 공부를 내팽개치고 본격 알바 전선에 뛰어들더니, 요리사가 되겠다고 정식 인가도 안 난 조리학교에 들어가 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하는 등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경남 양산에 본사를 둔 유망 스타트업 ‘코드 오브 네이처’ 박재홍 대표(31)의 10대 시절 이야기였다. 박 대표는 현재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쓴 논문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전교 꼴등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와 인터뷰한 내용을 일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코드 오브 네이처’ 박재홍 대표. ‘코드 오브 네이처’ 제공
나는 일찍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돈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생 때 주식 계좌를 처음 열고, 모의 투자 대회에도 참가했다. 공부 대신 알바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선선히 동의서를 써 준 덕분에 샤부샤부 가게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이내 피자집으로 옮겨 피자와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받았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교는 부산조리고에 진학했다. 졸업하면 시급을 더 준다는 말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식 인가도 나기 전이었다. 요리사의 꿈은 현장 실습 과정에서 손을 다치는 바람에 멀어졌다. 대신 식재료 생산으로 눈을 돌렸다.
열아홉에 농사를 짓겠다며 경남 함안으로 귀농했다. 초보 농사꾼의 고추와 참깨 농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귀농이 실패로 끝나던 무렵 시골집 지붕 위에 있던 이끼가 눈에 들어왔다. 이끼는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만 산다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이끼 종류는 너무 다양했다. 양지에 사는 이끼도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내가 본 건 햇빛이 강하고 건조한 지붕 위에서도 잘 사는 ‘지붕빨간이끼’였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천안에 있는 연암대 원예과에 진학했다. 교수님은 연구할 주제를 알아서 정하라고 했다. 나의 주제는 ‘이끼’였다.
서리이끼. ‘코드 오브 네이처’ 제공
부산대 식물생명과학과에 편입하며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학교에 붙어 있던 창업 공모전 포스터가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공모전에 목을 맸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에서 열린 공모전에는 빠짐없이 다 나갔다. 농림축산식품부·산림청 청년창업 경진대회 ‘F-스타트업’ 대상, 부산시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대상, 고용노동부 주최 소셜벤처 경연대회 부산 결선 2020 1위, 전국 결선 2020 대상, 기획재정부 대국민 혁신성장 정책공모(그린뉴딜 분야) 대상까지 모두 휩쓸었다. 코로나 시절이 되레 도움이 되었다. 대개 서울에서 대면으로 하는 최종 발표 심사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자취방에 앉아서 발표하니 하루에도 몇 탕을 뛸 수 있었다.
처음엔 공모전에서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하나가 붙으면서 심사 위원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뒤엔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심사 위원의 눈에 들만한 아이템을 추려서 나갔다. 공모전은 고객이나 투자자 관점에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점도 낮았고 변변한 영어 성적도 없었지만 시험 삼아 넣어 본 대기업 공채에서도 모두 합격했다. 공모전 스펙 덕분이었다.
내 별명이 상금만 받고 ‘먹튀’한다고 해서 ‘공모전 헌터’였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공모전에서 1등을 내리 세 번 하는 동안 공교롭게도 계속 심사 위원이었던 분이 나를 불렀다. “공모전은 인제 그만 하고, 그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 봐라. 내가 투자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취업, 창업, 대학원 진학이라는 갈림길에서 고민을 했다. 2021년 ‘코드 오브 네이처’를 창업하면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여러 공모전 대회에 참가하면서 만난 능력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모든 게 공모전 덕분이었다.
구슬이끼. ‘코드 오브 네이처’ 제공
자연의 천이(遷移) 단계에서 이끼가 가장 먼저 자란다. 그다음에 이끼를 둥지나 먹이로 삼는 곤충이, 또 곤충을 먹으려는 새가 나타난다. 이어서 동물이 돌아오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생긴다. ‘코드 오브 네이처’는 산불 등으로 생명이 사라진 땅 위에 이끼를 기반으로 하는 복원 솔루션을 제공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천이의 첫 단계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개발해 품종 등록을 마친 이끼는 모두 7종류다. 양지에서 잘 버티고, 토양 속 영양분을 증대시키고, 유용한 미생물과 공생하는 품종이다. 산불이 난 지역에는 그늘이 없기에 양지에서 잘 버티는 품종을 선별해서 개발했다. 청양고추나 샤인머스캣처럼 남들이 이 이끼를 쓰려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
그까짓 이끼,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신이 아닌 이상 생물종을 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가 개발한 7개의 이끼를 따라오려면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최소 7년이 걸린다. 이끼 개발비보다 우리 회사를 인수하는 게 싸게 치이니 외국계 기업에서 자꾸 인수합병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회사는 2019년에 일어난 강릉시 경포 일대 산불 피해지역 토양의 생명력과 생물다양성을 회복시키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염해로 작물 생장이 어렵던 충남 태안 정주영 간척지도 2년 내 정상 토양의 80%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관광객으로 망가진 제주 도너리 오름은 이미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황폐화 토양 복원 수요는 국내보다 해외에 훨씬 많다.
드론을 이용해 이끼 포자를 뿌리고 있다. ‘코드 오브 네이처’ 제공
경남 양산에 본사, 서울에 지사를 둔 것도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다. 사실 서울에는 재미있는 회사가 많지만, 지방에서 ‘코드 오브 네이처’는 독보적이다. 투자를 지역에 한정한 펀드나 지원금을 받기도 쉽다. 요구 사항을 지자체에 이야기하면 피드백이 바로 와서 좋다. 부산이나 경남은 청년 지원이 잘 되어 있다. 지역에 연고가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지역에 내려오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달 표면이나 지구의 사막처럼 황폐한 땅을 농사 지을 환경으로 바꾸는 연구가 한창이다. 지난해에 참가한 ‘CES 2024’는 꿈을 우주로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한국관에 있는 기업 중에서는 ‘코드 오브 네이처’에 해외 투자사를 비롯해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다녀간 것 같았다. CES에서 만난 미국 측과 협업해서 진행한 달과 화성 토양 복원 연구도 잘 끝났다. 우리 이끼와 미생물로 처리했을 때 달과 화성의 모사 토양에서 키운 보리의 낱알이 무겁고 많이 맺히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영화 ‘마션’에 나오는 것처럼 우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우주에서 장기간 생활하려면 현지에서 경작하거나 지구에서 식량을 보낼 수밖에 없다. 지구에서 식량을 보내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현지의 토양을 복원해서 작물을 생산하면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CES 2024’는 꿈을 우주로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드 오브 네이처’ 제공
나는 지금 ‘우주 비행사’라는 다음 꿈을 꾸고 있다. 박사 논문도 이끼와 미생물로 우주 토양 복원, 중국 차밭 복원, 국내 간척지 복원 세 개를 엮어서 쓸 계획이다. 그런데 국내에는 이끼 관련해 연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아쉽다. 이끼가 유망한 분야라는 사실을 많이 알리고 싶다. 중고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면 꼭 가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학생들에게 이끼의 매력에 한번 빠져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은 전교 꼴등이 공부 잘하는 서울대 대학원생이 된 비결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니까 가능했다. 국영수 같은 수능 공부를 하라고 했으면 절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공부는 싫은데 연구는 좋아한다. 연구하는 공부는 아무리 해도 피곤하지 않고 너무 재밌다.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부모님을 잘 만난 행운아였다. 뭘 하겠다고 하든 부모님은 반대 없이 다 하게 해 주셨다. 실업계인 부산조리고에 간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주식 투자를 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나 하라거나, 안정적으로 돈을 벌라고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무관심했던 게 아니라 늘 응원해 주셨다. 나중에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 때도 부모님 반만 하더라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히고, 아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 그때 지원을 해 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재홍 대표는 "지금도 공부는 싫은데 연구는 좋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