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던 섬, 우도

눈부신 흰색 해변 서빈백사 해수욕장
동화 같은 건축물의 훈데르트바서 파크
수만 권 책 쌓은 듯한 웅장한 후해석벽
행운이 따라야 보게 되는 남방큰돌고래
국내 3대 백패킹 성지로 꼽히는 비양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2026-07-10 09:00:00

‘저 섬에서/한 달만/뜬눈으로 살자/저 섬에서/한 달만/그리운 것이/없어질 때까지/뜬눈으로 살자.’ 섬을 너무나 사랑해서 ‘섬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생진 시인. 이 시인은 70여 년 동안 1000곳이 넘는 섬을 찾아다녔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해 뜬눈으로 살자는 ‘저 섬’이 바로 우도다. 섬 속의 섬. 부산에서 제주도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야 하니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우도는 한번 가 보니 갈 이유가 넘쳐났고, 또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도(又島)인가.


제주도 우도는 전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면이지만, 제주도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깎아지른 듯한 후애석벽 위쪽으로 우도봉이 보인다. 제주도 우도는 전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면이지만, 제주도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깎아지른 듯한 후애석벽 위쪽으로 우도봉이 보인다.

바다 쪽에서 보면 소가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우도(牛島)다.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우도는 전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면이지만, 제주도 유인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연간 130만~1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활화산처럼 뜨거운 섬이다. 승선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이날 우도로 들어가는 우리 배에는 중화권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선상에서 화보라도 찍어 SNS에 올리려는지…. 우도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던 시인이 이 광경을 봤으면 눈을 질끈 감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도에서는 이동 수단으로 삼륜 전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우도에서는 이동 수단으로 삼륜 전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하우목동항에서 내리니 언제 봤다고 스쿠터 대여소 주인들이 가장 먼저 반긴다. 보통 ‘사이드카’라고 부르는 앞바퀴 하나, 뒷바퀴 두 개가 달린 삼륜 전기차가 우도에서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2017년부터 우도 내 교통 혼잡을 막기 위해 렌터카 진입 제한 조치가 도입된 이후 벌어진 현상이다. 알록달록한 각종 사이드카, 전기자전거, 렌터카…. 우도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지 기사님의 구수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우도 주민들이 운영하는 우도 순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는 가장 저렴하면서 여행하는 맛도 났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흰색 해변으로 눈이 부시다. 서빈백사 해수욕장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흰색 해변으로 눈이 부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순환 버스의 첫 번째 정류장이 서빈백사(西濱白沙) 해수욕장이다. 우도 서쪽의 하얀 모래 해변이란 뜻처럼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색 해변으로 눈이 부신 곳이다. 해변을 걸을 때 발밑에서 사각사각하는 색다른 소리가 들렸다. 한 움큼 손에 집어 들었더니 뜻밖에도 예사 모래가 아니었다. 김, 우뭇가사리, 꼬시래기는 모두 홍조류다. 이 같은 홍조류가 석회질을 흡수하면 조개껍데기처럼 딱딱해지고, 파도에 굴러다니다가 팝콘 모양의 덩어리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홍조단괴가 오랜 세월 쌓여서 서빈백사가 되었다고 한다. 산호 해변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산호는 동물, 홍조류는 식물이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성질과 색깔마저 바꿔 놓는 시간의 위력이 새삼 신비하게 느껴진다.

우도에는 지금도 수백 명의 해녀가 산다. 우도에는 지금도 수백 명의 해녀가 산다.

다시 버스에 올라 천진항으로 가는 길에 나 홀로 물질하는 해녀 한 분을 만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도에 있는 내내, 곳곳에서 해녀들을 볼 수 있었다. 우도는 제주에서도 해녀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한때 우도 전체 주민의 절반가량이, 지금도 수백 명의 해녀가 산다. 우도에는 거친 바다 덕분에 유독 숨이 길고 기량이 뛰어난 ‘상군(上軍) 해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가 전복, 소라, 문어 등을 잡는 이들은 숨 참는 시간이 2분을 넘나들 정도로 기량이 압도적이다. 제주도 우도는 부산에 정착한 ‘출가(出稼) 해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루 근무를 마친 해녀 한 분이 오토바이로 퇴근해 돌아오는 모습이 평범한 샐러리맨의 눈에 왠지 부럽게 느껴졌다.


지난 2022년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문을 열었다. 지난 2022년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문을 열었다.

두 번째 내린 곳이 톨칸이 해변이다. 절벽 아래 움푹 파인 지형이 마치 소가 풀을 먹는 여물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오로지 훈데르트바서 때문이다. 황금색과 바다색 양파 모양 돔 아래로 색색의 세라믹 타일을 이어 붙인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2022년 우도에 문을 연 훈데르트바서 파크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처음 알게 된 그의 예술과 건축 세계를 제주도 우도에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훈데르트바서는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였다. ‘인간은 자연에 초대된 손님입니다. 예의를 지키세요.’ 곳곳에 내걸린 그의 철학을 담은 문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본래 대형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우도 주민들이 반대하면서 훈데르트바서의 예술과 환경보호 철학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라며 세상을 규격화하는 직선을 극도로 싫어한 덕분에 화장실까지 꼭 가봐야 할 작품으로 승화됐다.


훈데르트바서 파크에는 화장실까지 예술 작품에 가깝다. 훈데르트바서 파크에는 화장실까지 예술 작품에 가깝다.

1만 5000평 대지 위에 들어선 훈데르트바서 파크는 규모나 예술성에 비해 생각보다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우도에는 일정이 촉박한 당일치기 여행자들이 많아 ‘패스’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 사실 파크 내에 있는 카페 ‘훈데르트윈즈’나 ‘카페 톨칸이’는 조용하게 성산일출봉과 우도 바다를 즐길 최고의 명당이다. ‘진정한 의미의 문맹이란 다른 사람의 지식을 단순히 답습하는 맹목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창조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그의 말에 지금까지 무한 감동을 받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관광객을 싣고 다시 달린 버스는 검멀레 해변에 섰다. 검은 모래사장 검멀레 해변에 서서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지층의 후해석벽(後海石壁)을 바라본다. 우도에서 가장 웅장하고 역동적인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모터보트를 타고 후해석벽 바로 아래까지 다가가는 ‘주간명월(晝間明月) 투어’도 신청하기로 했다. 후해석벽 아래에는 거대한 해식동굴이 있다. 고래가 살던 동쪽 언덕의 굴이라는 뜻의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오전 10~11시쯤 동굴 안으로 햇빛이 들이치면 동굴 천장에 둥근 달이 뜬 것 같은 신비로운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보트 투어 중에 운 좋게 돌고래 떼를 만났다. 보트 투어 중에 운 좋게 돌고래 떼를 만났다.

이날 보트 투어는 우연히 만난 돌고래 떼 덕분에 대박이었다. 제주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야생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자주 출몰하는 스팟이 따로 있을 정도다. 현재 통틀어 12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제주도 한 바퀴를 빙빙 돌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돌고래 떼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우도 여행은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스릴 넘치는 보트 투어, 허리 약한 분은 탑승 금지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마지막으로 잠깐 둘러본 곳이 비양도다. 섬 속의 섬 우도에 딸린 새끼 섬. 2003년에 다리로 연결된 비양도는 국내 3대 백패커 성지로 꼽혀 일 년 내내 야영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후해석벽, 서빈백사와 함께 ‘우도8경’ 중 제3경에 꼽히는 야항어범(夜航漁帆)은 보지 못했으니 사실 비양도에서는 진수를 놓친 셈이다. 여름철 밤이 되면 우도 앞바다에는 수백 척의 오징어, 갈치잡이 배들이 모여든다. 이 배들이 일제히 집어등을 켜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 위로 환상적인 불빛의 무리가 펼쳐진다. 밤하늘의 은하수가 바다로 통째로 내려앉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우도, 특히 비양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풍경이다.


‘봉끄랑’의 레인보우버거. ‘봉끄랑’의 레인보우버거.

당일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주는 ‘우도해녀식당’의 문어 해물 전복 칼국수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고, 수제 버거 전문 ‘봉끄랑’의 레인보우버거는 먹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땅콩 아이스크림은 빼놓을 수 없는 우도의 심심풀이 땅콩이었다. 다 좋았지만, 우도 밤바다를 보지 못한 게 아직도 통한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후 4~5시 이후가 되면 당일치기 관광객들이 나가면서 우도는 조용해진다. 우도를 다시 기약하는 이유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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