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tvN 금토드라마 '또 오해영'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다. 단지 2.1%로 시작해 10%에 가까운 시청률로 끝을 맺어서가 아니다. 그리 큰 관심을 받으며 닻을 올린 건 아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현실감 있는 전개로 그 어떤 드라마보다 화제의 중심에 섰다.
특히 드라마의 타이틀롤을 담당했던 배우 서현진은 단연 돋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 보여 더욱 정감 갔던 20대 여성 오해영을 그려내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서현진은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빌라드베일리홀에서 진행된 '또 오해영'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특별했던 드라마가 끝난 소회와 솔직한 자신의 모습, 앞으로의 계획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놨다.
■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 대본이 재밌었기 때문에 5%를 넘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기대했을 뿐이다. 물론 그에 따라오는 포상휴가도 마음속으로 그려봤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웃돌았다. '또 오해영'은 tvN 월화극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서현진은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고 웃은 뒤 "특히 내가 대본을 보며 울고 웃었던 부분들을 함께 느끼셨다는 게 정말 기분 좋다"고 밝혔다. 이어 "어떻게 된 걸까요?"라고 반문,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내며 웃음을 안겼다.
이런 드라마의 성공에는 서현진으로 대변되는 '공감'의 키워드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또 오해영’은 ‘자존감’이 한 축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저 자존감에 대해 그녀는 ‘난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라는 대사를 꼽으며 “나 또한 매일매일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그런 부분들이 드라마에서 잘 드러나 공감을 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멜로물인 만큼 그 외에는 사랑 이야기로 채웠다. 서현진은 “내 연애방식의 민낯을 다 보여드리는 게 목표였다”며 “오해영을 연기하지만 결국 서현진이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민낯을 보여주지 않으면 시청자분들이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그녀 또한 사람인지라 예쁜 모습, 사랑받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괴리도 있었다. 그녀는 “순간순간 나도 사람인지라 창피하더라”면서도 “그럴 때마다 스태프분들이 용기를 주며 많이 도와주셨다. 그동안의 작품 중 가장 거짓 없이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출연 배우들이 누구보다 열렬한 '또 오해영'의 애청자였고 팬이었다. 서현진은 28일 에릭, 전혜빈, 예지원 등의 출연진들과 함께하며 피날레를 즐겼다. 그녀는 "아직 종영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회를 보며 '어쩜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냐'고 말했다. 주책스러웠다"며 "여느 시청자들보다 배우들이 1등 애청자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 오해영 아닌, ‘진짜 서현진’
오해영의 역할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서현진이기에 가능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만큼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싱크로율이 높았고 어울렸다.
서현진은 “오해영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며, 극 중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에 박도경(에릭)에게 달려갔던 오해영을 언급했다. 실제 자신이었더라도 한걸음에 달려갔을 것이라고.
서현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데 당연히 가야 하지 않나요?”라고 되물으며 웃었다. 이어 “처음에는 (오해영이) 나와 다른 줄 알았는데, 되짚어보니까 내게 오해영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 오해영은 하태진(이재윤)과 박도경,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결혼을 약속했던 하태진과는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했지만, 박도경과 함께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됐다. 실제 서현진의 선택 또한 박도경이란다. 그녀의 생각은 독특하면서도 고개를 절로 끄덕여지게 했다.
서현진은 “나는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태진도 나를 찼던 사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긴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도경은 오해영에게 솔직했다. 한 때는 ‘까칠함’의 대명사였던 박도경이지만, 오해영을 만나 자신을 내려놨고 조금씩 민낯을 드러냈다. 서현진은 “박도경 같은 남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자신의 못난 부분을 나에게도 오픈해주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을 다시 선택하고 싶다”며 밝혔다.
1985년생, 서현진 또한 오해영과 비슷한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옛날에는 연애가 곧 결혼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도 “나이를 먹다 보니 결혼을 바라보는 연애를 해야 하나 싶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털어놨다.
더군다나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가오게 하지도 못한다”며 “나는 가만히 있는다. 그저 내가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연애스타일을 언급했다. 이어 “최근에 친한 지인이 결혼했는데 내 결혼에 대해 걱정하며 가더라”고 웃었다.
■ ‘또 오해영’, 그 이후
“오히려 감사한 일 아닌가요?(웃음)”
서현진에게 ‘또 오해영’은 소위 말하는 인생작이다.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배우로서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큰 임팩트를 남겼던 작품인 만큼 당분간은 서현진에게 ‘오해영’이라는 꼬리표는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걱정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서현진은 행복하다.
그녀는 “기억해주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누군가는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것 또한 내가 이겨나가야 할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서현진은 의연하다. 언젠간 사라질 인기라는 생각에 좀처럼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녀는 배우로서 입지가 넓어진 것에 대해 “지금은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또 사라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자평했다. 따뜻한 외모와는 달리 자신에게 냉철한 잣대는 오랜 무명시절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사진=점프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두연 기자 myajk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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