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위 속 미생물-'헬리코박터' 넌 누구냐?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17)

2020-10-25 07:00:00

위에는 정상적인 미생물 균총(菌叢)이 없다. 위 속은 극단적인 산성이라 미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물이 위 속으로 들어오면 위산이 분비되어 pH가 2이하까지 내려간다. 이 산도는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극한 환경이다. 그래서 종전에는 염산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지옥천(泉)에 미생물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1982년 호주의 의사 워렌(Warren)과 마샬(Marshall)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라는 세균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하나의 미생물 발견에 노벨상까지 주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그랬겠나 싶다.


미생물 얘기는 잠깐 미루고, 그렇다면 왜 위 속이 이런 극단적인 산성 환경이 될까? 첫째는 음식에 묻어 들어온 병원균을 비롯한 각종 미생물을 죽이기 위함이다. 가끔 우리가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약간 맛이 간 음식을 섭취해도 여간해서 탈이 나지 않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위 속 음식물의 pH가 2이하로 내려가야 비로소 단백질분해 효소인 펩신(pepsin)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소화는 대부분 소장에서 이루어지지만 시작은 위에서부터다. 신트림과 속 쓰림 현상은 위산(염산)이 범인(?)이다.


그러나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있다. 이들은 위산의 위력을 무력화시키는 방어기전을 갖고 있어서다. 콜레라, 장티푸스, 살모넬라 등 수인성전염병이나 식중독균은 교묘히 이런 산성 환경을 피해 장으로 내려간다. 몸에 좋다는 유산균도 대부분 위산에 의해 사멸한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코팅하거나 캡슐로 싸서 보호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산에 강한 종류나 인해전술을 구사하여 일부나마 장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법도 쓴다.


위장에 상존하는 유일한 미생물인 '헬리코박터'는 편모를 가지는 나선균으로 위장 점막에 파고들어가 서식한다. 통계 상 어린이의 약 20%, 중년층 70%, 노년층은 90%가 보유하고 있다. 전염경로는 음식 등을 통해서다. 전 인류의 50% 이상이 이 균을 갖고 있으며, 한국인은 특히 그 비율이 높아 약 70% 이상으로 추측한다. 위암의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보균자의 1% 정도에서 위암이 발견된다는 보고가 있다. 국제암연구소에서 이 균을 1군 발암 유발인자로 지정했다.


이 균의 병증이 급성위염인 경우 초기에는 명치의 가벼운 통증, 오심, 약한 몸살 등이 나타나고, 만성일 때는 표재성위염, 위축성위염 등을 보이나 대개는 아무런 자각증상이 없다. 치료의 대상은 되진 않지만 위염이 오래가면 위암의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한편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선암, 위림프종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논문도 있다.


진단은 조직검사법, 조직배양법, 요소분해효소검사법, 혈청학적검사법, 요소호기(呼氣)검사법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타액이나 소변과 대변을 이용하는 방법도 채택한다. 치료법은 두 가지의 항생제와 강력한 위산억제제를 병행하여 1~2주간 투여하며, 제거율은 80~90% 정도이다. 비교적 치료는 잘 되나 재감염에 의한 재발이 잦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장에 상존하는 헬리코박터는 어떻게 이런 지옥천에서도 살아남을까? 위산을 중화하여 안전한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기막힌 생존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균은 '우레아제'(urease)라는 요소분해 효소를 만들어 주변에 있는 요소(NH2CONH2)를 분해, 알칼리성용액을 만들어 염산을 중화시킨다. 정말 놀라운 생존기술이다. 여기서 요소라는 것은 오줌에 많은 물질이다. 몸속에서 단백질이 에너지원으로 쓰일 때 필요 없게 된 유독성 아미노기(NH2)를 무독하게 만들어 혈액을 통해 내다 버리는 무독성 폐기물, 이게 바로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이 있다. 이 균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한다는 것. 앞서 언급한 요소분해 효소라는 단백질은 세포 밖으로 나오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주위의 염산을 직접 중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동료 세균 일부가 죽어가면서 세포 내에 있던 이 효소가 터져 나와 주위의 염산을 없애는 방법으로 전우를 살려낸다는 것이다. 이른바 동료의 주검을 방패막이로 하는 기발한 전법이다. 염산과의 전투에서 소를 희생시켜 대를 구하는 희생정신이 발휘되는 셈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 인가… 이 균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우리의 면역체계도 거뜬히 견뎌내는 신공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숙주가 다소의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헬리코박터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보통 기생생물이 동거를 장기화하려면, 숙주에 피해를 덜 주고 이익은 톡톡히 받는 생존전략을 쓰는데, 바로 이 균이 기생 원칙의 기본에 충실한 셈이다.


모든 병원균과 기생충은 이런 식으로 진화하여 생존해 왔다. 숙주를 죽이면 자기의 생존공간이 없어지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방식 말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코로나19'는 그렇게 영악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숙주를 지나치게 괴롭혀 숙주로 하여금 때려잡을 방법을 강구케 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까. 다음 주제는 '장내미생물(대장균)'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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