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 2025-12-14 08:00:00
클립아트코리아
연말이 다가오면 증권업계는 연례행사처럼 내년 코스피 지수 전망치를 일제히 쏟아낸다. 하지만 올해도 증권가의 코스피 전망은 어김없이 모두 빗나갔다. 0%에 가까운 적중률 탓에 개인투자자들의 증권사 보고서에 대한 신뢰도는 ‘제로’(0)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 코스피를 장밋빛으로 본 증권업계의 올 연말 전망이 투자자들의 불신을 종식할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 올해도 ‘낙제점’ 오명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12곳이 지난해 말 내놓은 올해 코스피 예상 밴드는 2250~3200으로 집계됐다. 올해 국내 증시가 마지막 정규장까지 약 10거래일을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증권업계의 코스피 지수 적중률은 0%로 올해도 낙제점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
12곳 중 전망치가 가장 높았던 증권사는 SK증권이다. SK증권은 코스피 예상 밴드를 2416~3206으로 점쳤다. 이 외에도 대다수 증권사는 올해 코스피 지수가 높아야 3000선이란 전망이 대세였다. 증권사별로는 △신한투자증권(2600~3100) △키움증권(2400∼3000) △LS증권(2400∼3000) △대신증권(2380∼3000) △유안타증권(2350∼3000) 등이 올해 코스피 상단 밴드를 3000선으로 바라봤다.
반면 △삼성증권(2350~2900) △신영증권(2260∼2870) △NH투자증권(2250~2850) △IBK투자증권(2380~2830) △한국투자증권(2300~2800) 등 5개 증권사는 3000선 아래로 전망했다. iM증권(2250~2750)은 상·하단을 모두 가장 낮게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리스크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올해 초 국내 증시에 먹구름을 드리웠지만, 1000포인트 이상 벌어진 예측 범위를 고려하면 증권사들의 코스피 지수 전망이 억측에 불과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상반기 코스피가 3000선으로 마감하자, 증권사들은 연말 코스피 전망치를 앞다퉈 상향 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하반기 적중률도 상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들이 하반기 코스피 전망을 2533~3224를 오갈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예측 범위를 적게는 500포인트부터 많게는 900포인트까지 넓히며 코스피 지수 전망을 발표했다. 코스피 하단을 제시하지 않고 오직 4000선을 예상한 하나증권과 대조적이다. 결국 예측 범위를 대폭 넓혀도 맞추지 못한 실정이지만, 이처럼 불확실한 전망을 보고서로 계속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 “증권사 보고서 신뢰 잃은 지 오래”
매번 빗나간 예측 탓에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증권사 보고서가 객관성과 신뢰성을 잃은 지 오래인 만큼, 당초 증권업계의 시장 전망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정의정 대표는 “애널리스트들이 객관적으로 보고서를 낸다고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며 “개인투자자들이 종목토론방 등에 올린 게시글들을 보면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사를 향한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증권업계의 신뢰도가 추락한 사례로는 ‘기업분석 보고서’가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보고서를 발행하는 국내 증권사 30곳의 올해 상반기 ‘매수’ 의견 평균은 92%로 집계됐다. 중립(보유)은 7.8%, 매도 비율은 0.2%에 불과했다. 상장사 10곳 중 9곳은 ‘묻지 마 매수’인 셈이다. 이 중 한양증권은 중립과 매도 없이 ‘100% 매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교보증권의 매수 비율도 99.3%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와 달리 외국계 증권사 11곳의 투자 의견은 국내 증권사보다 분별력이 있는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외국계 증권사 11곳의 국내 지점은 매수 의견이 절반을 넘긴 59.5%로 많은 편이나, 중립과 매도는 각각 29.3%·11.2% 수준으로 두 자릿수 비율을 보였다. 국내 증권사 30곳은 투자 의견 10건 중 9건이 매수 의견인 점과 견줘 해외 증권사는 중립이나 매도 의견이 40% 정도 분포해 있다.
문제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낙관적인 전망으로 남발돼 투자자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 연구위원이 발표한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67%였던 매수 의견 비중은 2010년대 89%, 2020년대는 93% 수준까지 달했다. 김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이 20년 이상 지속해서 고착되고 있다”며 “애널리스트 투자 의견이 대부분 매수 의견이고 변경되지도 않는다면 (증권사 보고서) ‘무용론’이 제기되는 비판도 무리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 7500 vs 4150, 내년 리서치 명가는 어디?
그럼에도 최근 증권사들은 ‘사천피’ 열기에 힘입어 내년 코스피 지수를 대부분 낙관적인 전망으로 가득 채웠다. 내년 코스피 예상 밴드의 상단과 하단 차이는 1800포인트(3200~5000)로 올해(2100~3206)보다 큰 격차를 보였다. 예측 범위를 대폭 넓혀 이른바 ‘때려 맞추기’ ‘선무당’ 식의 전망이 반복됐다는 비판 역시 적지 않다.
가장 높은 전망치를 내놓은 KB증권은 2026년 하반기 5000선, 2027년 상반기에는 750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내년 코스피 지수를 이끌 업종은 초호황기를 맞은 반도체라고 내다봤다. 내년도 코스피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6% 증가한 401조 원으로, 이 중 반도체 업종이 107조 원을 기여할 것으로 관측했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과거 30년간 한국 증시의 세 차례 강세장(1998년·2009년·2020년) 시기에도 정확히 200일이 경과한 시점에 단기 조정이 진행됐다”며 “단기 조정 폭이 컸던 만큼 이후 코스피는 급반등했다”고 설명했다. 장기 강세장이 지속될 경우, 7500선까지 오를 것이란 주장이다.
다만 여러 낙관적인 전망 가운데 비관론도 제기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교보증권은 ‘코스피 지수 고점이 거의 다 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통해 내년 1분기가 코스피 지수의 최고점으로, 지수도 최대 4150포인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대형주의 호재만으로 코스피 지수를 견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다.
교보증권 김준우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 때는 다 같이 상승하는 건강한 상승장이었지만, 현재는 대형주 혼자 독주하는 모양새”라며 “현재의 코스피 지수 흐름은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와 매우 유사하지만, 현재 코스피는 너무 급한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코로나19 당시 2021년 2월 17일 코스피가 3133.73포인트 고점에 도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코스피 랠리 고점은 연말~연초 부근으로 추정된다”며 “내년 코스피 지수가 4150포인트를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